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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Dec 16. 2021

모두가 불행하게 될 수도 있다

1916년 스페인의 갈리시아에서 태어난 카밀로 호세 셀라는 1934년 의과대학을 입학했지만 1년이 지난 뒤 학업을 포기하고 방황했다. 이 시기에 그는 문학에 뜻을 두게 되고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스페인에는 내전이 일어나 그는 프랑코의 반란군에 가담해 싸우다 부상을 입고 전장에서 돌아와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쓴 소설이 바로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다. 출간한 당시 금서 조치를 당했지만, 상업적으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웠다. 이후 많은 작품을 계속하면서 스페인 왕립 학술원의 종신회원이 되었고 1989년 스페인 출신으로 처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가족 내의 불화가 한 개인을 어떻게 악하게 변하도록 만들며 그로 인해 가족 전체가 몰락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는 화목함이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에 운명 지어지는 것이기에 나는 내 인연에 순응하려고 노력했지요. 내가 절망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자기 의지대로 하기가 좀 더 쉬울 때인 어린 시절, 나는 잠깐 동안 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삶을 위한 투쟁은 매우 혹독하다면서 우리가 그 싸움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지성으로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거든요.”


   어릴 적 파스쿠알 두아르테는 자신의 부모가 툭하면 격렬하게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만 보고 자랐다. 그의 부모는 서로를 배려하거나 아껴주는 것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오히려 잘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도 역시 울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것의 불행을 위해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심장이 굳어 버린 여자, 그 여자가 내 어머니였습니다. 나는 로사리오가 그랬듯 울어 버렸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증오를 느꼈습니다. 그 증오심이 너무도 빨리 커져서 나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지요. 울지 않는 여자는 물이 솟아나지 않는 샘과 같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답니다. 혹은 노래하지 않는 하늘의 새와 같아 하느님이 원하신다면 날개가 떨어져 버릴 테지요. 들짐승들이 그걸 필요로 하니까 말입니다.”


  파스쿠알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동생의 죽음에도 아무런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자신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어머니에게 점점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쌓이게 되고 결국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내면의 소유자로 변하게 된다. 


  “우리 두 사람은 우주의 섭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느님께서 우리로부터 그 녀석을 빼앗아 가시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희망, 우리들의 전 재산이자 모든 행운이었던 아이를 제대로 키워 보기도 전에 잃게 될 줄이야. 사랑이란 참 알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우리를 떠나버리니까요. 며칠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땅에 되돌려 줄 때는 아이가 열한 달 되었을 때였지요. 열한 달 동안 살면서 보살핌을 받았는데 사악하고 못된 찬바람이 그 세월을 쓰러뜨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결혼한 파스쿠알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이마저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게 되자 그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로 삶에 대한 의욕을 잃게 되고 만다. 


  “도망가야 할 겁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아무도 모르는 다시 새로운 증오를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증오가 알을 낳는 데는 몇 년이 걸립니다. 그즈음이면 그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고 증오가 자라서 맥박을 두드릴 때가 되면 그의 삶도 끝날 겁니다. 마음은 더 이상 고통을 담아내지 못하고 두 팔뚝은 힘없이 늘어져 버리겠지요.”


  파스쿠알의 내면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증오와 분노가 쌓이게 되고 그러는 사이 그의 아내가 동네 사람에 의해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자 그의 내면은 결국 폭발하게 되고 만다. 


  “나는 내 마누라를 죽인 놈, 내 누이의 몸을 망치고 내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놈을 찾아 나섰습니다. 놈이 숨어 지내서 찾는 게 쉽지 않았지요. 그 건달 놈은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을을 떠나 네 달 동안이나 알멘드랄레호에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나는 놈을 잡으러 나섰다가 나에베스의 집에 가서 로사리오를 보았습니다. 로사리오가 얼마나 변해 있었는지. 겉늙은 얼굴에는 때 이른 주름살이 가득했고, 눈가는 기미가 끼어 시커멨으며 머릿결도 윤기가 없었습니다. 예전의 예뻤던 모습을 상상하니, 그 애를 바라보는 게 고통스러웠습니다.” 


  파스쿠알은 자신이 아꼈던 아내와 동생에게 아픔을 주었던 동네의 건달을 결국 살인하게 되고 만다. 그로 인해 그는 3년 동안 감옥을 가야 했고 감옥생활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주위의 환경은 더 나아진 것은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파스쿠알을 괴롭히기만 했고 그의 인내는 결국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고 만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내 성질을 건드리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시체 냄새를 맡고 파리떼가 모이듯 악해져 갔죠. 참고 삼킨 미움에 중독된 내 마음은 아주 사악한 생각들을 만들어 내, 나는 스스로의 분노에 놀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가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하루하루 똑같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내장에 박혀 있는 고통도, 시야를 가리는 폭풍의 전조도 한결같은 채 말입니다.”


  재혼한 파스쿠알은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내의 포주 역할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국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선을 넘어서며 어머니를 죽이게 되고 만다. 그렇게 한 인간과 가정 전체가 한순간에 몰락되어 버리고 만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도 못한 채 그렇게 끝이 나게 되어 버린다.  


  물론 파스쿠알은 가족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모를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신도 더욱 발전하려고 했다면 다른 결과로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은 나약하여 환경이나 조건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답이고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옳지 않고 타인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파스쿠알도 행복한 가정을 원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 했던 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마저 죽이게 되었던 것일까?


  우리의 삶은 서로가 얽혀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 탓만 하다 보면 모두가 불행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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