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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Dec 22. 2021

오늘을 잡아라

솔 벨로는 1915년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9세 때 시카고로 이주해 거기서 평생을 살았다. 시카고 대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4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썼으며 197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오늘을 잡아라>는 솔 벨로의 대표적인 중편 소설로 직업을 잃어버리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중년의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며 삶의 비참함을 느끼는 그는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그 누군가일 것이다.


  “그즈음 윌헬름에게도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캘리포니아로 오면서 그는 토미 윌헬름이 됐다. 애들러 박사는 아들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즘도 그는 아들을 여전히 윌키라고 불렀다. 지난 사십 년 넘게 그렇게 해 왔듯이. 지금 윌헬름은 아무렇게나 뭉쳐진 신문을 겨드랑이에 낀 채,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자신의 폐부, 신경, 체격, 기질 같은 것들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젊고 팔팔하고 매사에 충동적이고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 불만스러울 때는,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뜯어고쳐 보고 싶어 한다.”


  주인공 토미 윌헬름은 자신의 꿈이었던 할리우드에서의 배우가 되기 위해 오랜 세월 자기의 젊은 청춘을 모두 바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는 이제 더 이상의 노력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꿈을 접는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아 이름마저 바꾸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고 다시 새로운 길을 가야만 했다.


  “나는 너한테 한 푼도 줄 수 없어. 돈을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야. 너와 네 누이는 내가 가진 돈 마지막 한 푼까지 가져갈 거야. 그러나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어.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있다는 말이다. 생명이 아직 붙어 있어. 나도 너나 다른 사람처럼 살아 있어. 그리고 나는 누구도 내 등에 짊어지고 싶지 않단다. 다들 내 등에서 내려가. 그리고 윌키야, 너에게도 똑같은 충고를 해 주마. 누구도 네 등에 태우지 말아라.”


  경제적인 파산에 가까운 어려움 속에 몰리게 된 윌헬름은 최후로 아버지에게 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실망시켜 왔기에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도움을 거절한다. 그는 이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이 황량한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의 아내도 그를 버렸고 이제 아이들도 만날 수가 없었다. 외로움의 극치를 맛보게 된 것이다.


  “이 시각이 또 다른 바로 지금의 순간이야. 이 순간을 살아야 하는데, 자네는 그것을 거역하려 하고 있어. 한 사람이 지금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잖아. 증권시장에 대한 생각일랑 잠시 접게. 그게 어디로 달아날까 봐. 이 일이 더 가치 있을 수도 있으니까”


  힘들고 외로운 상황에서 그는 탬킨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탬킨은 윌헬름에게 과거는 지나가 버렸기에 소용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오늘을 살라고 충고해 준다. 하지만 탬킨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윌헬름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다가온 사기꾼이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탬킨이 지난 삼사십 년 동안 여러 차례의 힘든 고비를 넘겨 온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이 위기를 잘 넘겨서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리라는 기대가 작용했던 것 같다. 사실 윌헬름은 자신이 탬킨의 등에 업혀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남의 등에 올라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공중에 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탬킨이었다.”


  윌헬름은 절망에 빠져 있는 자기에게 조그만 빛을 비추어 주는 탬킨을 믿고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탬킨에게 맡긴다. 탬킨이 윌헬름의 재산을 주식시장에서 커다란 수익을 올려 줄 거라 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탬킨은 윌헬름에게 전략적으로 다가온 철저한 사기꾼이었다. 탬킨은 윌헬름의 전 재산을 가지고 어느 날 사라져 버리고 만다.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 빠진 윌헬름, 그는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길가의 교회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에 인파와 섞여 들어가게 된다. 그 장례식에서 관에 누워 죽어 있는 사람을 보고 그는 흐느낀다.


  “이윽고 그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이성을 잃은 채 일관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그는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체내 깊은 곳에 있는 모든 눈물보가 갑자기 터져서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아 내게 하고, 몸에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고개를 떨구게 하고, 손수건을 들고 있던 손을 마비시켰다.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그의 노력은 소용없었다. 목구멍에 맺혔던 커다란 비탄의 응어리가 부풀어 올라와 그는 완전한 포기 상태에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윌헬름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모, 아내, 자녀, 친구, 재산 등 모든 것이 떠나가 버렸다. 그는 남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죽은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자신도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는 윌헬름의 눈에는 꽃과 불빛이 황홀하게 뒤섞였다. 파도 소리 같은 무거운 음악이 귓가에 들려왔다. 눈물이 가져다주는 위대하고 행복한 망각으로 인해 군중들 한가운데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던 그에게 음악 소리가 밀려왔다. 그는 그 음악을 듣고, 흐느낌과 울음에서 헤쳐 나와 그의 가슴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극치를 향하여, 슬픔보다도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갔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은 그것을 바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올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그러니 잃을 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잠시 내게 맡겨져 있는 것일 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두 나로부터 떠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 삶을 깨닫는 순간 잃어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오늘을 살아가는 것으로 삶에 충실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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