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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5. 2022

모둠전을 먹으며


https://youtu.be/7owzd1Ikw9o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빈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테이블은 모두 다 합해서 다섯 개였다. 네 자리는 이미 온 손님들로 차 있었고 가운데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다른 손님들은 이미 마신 막걸리나 소주로 인해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이 가게는 주로 전을 파는 곳으로 내가 사는 청주에서 차로 20분 남짓 운전하면 닿을 수 있는 조치원 전통 시장 안에 있는 새마을 전집이다. 가운데 자리에 친구와 함께 자리를 잡고 모둠전을 시켰다.


 어릴 적 영화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재미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고교 얄개, 거꾸리와 장다리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청춘 영화로 인기를 많이 끌었는데 이승현, 김정훈, 이덕화 씨 등이 주연을 맡았었다. 밝고 꿈 많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기에 나도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전집은 바로 그 당시 청춘스타라고 할 수 있는 이승현 씨와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곳이다. 조치원은 아주 조그만 동네로 예전엔 읍이었는데 나중에 대전으로 편입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동네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다. 전통 시장도 조그마하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가 넘었기에 시장 안의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다.


  새마을 전집도 동네와 마찬가지로 열 평도 되지 않는 조그만 가게였다. 테이블이 다섯 개밖에 되지 않으니 크기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친구와 얘기하다 보니 주문한 모둠전이 나왔다. 육전, 생선전, 동그랑땡, 장떡, 고추전, 두부전, 버섯전 등 여러 가지 전을 다 맛볼 수 있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전을 하나씩 먹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분들도 막걸리를 마시며 지나온 시간들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많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삶이 나의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으면 불행한 순간도 있고,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프고 아픈 날도 있기 마련이다. 영광과 환희의 날이 있었다면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삶은 그렇게 수많은 일과 사건, 그리고 사람들로 인해 가득 채워지게 된다. 모든 것들이 그렇게 얽히고설킨 채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평생 좋은 일만 있는 사람도 없고, 나쁜 일만 있는 사람도 없다. 삶을 크게 보면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이다. 모둠전처럼 여러 가지 것들이 다 섞여 있다. 전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듯이 인생도 쓴맛, 단맛 모두 합쳐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승현 씨도 많은 아픔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는 이 작은 도시 조치원에서 조그만 전집을 하면서도 새로 맞은 아내와 나름대로 삶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삶은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러한 것을 겪으며 인생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은 여러 가지 종류가 다 모여 있는 모둠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아픔과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 먹지 못할 양이었는데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둠전을 다 먹고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식당을 나오면서 매일 하는 말인데 그날따라 왠지 그 느낌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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