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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15. 2022

화작(化作)

 화작(化作)이란 나를 버리고 인연에 따라 모양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신라시대 원효는 요석 공주와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러자 원효대사를 위대하다고 하던 왕족, 귀족, 스님들이 원효를 크게 비판했다. 당대 최고의 스님이 하루 아침에 파계를 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원효는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버렸다. 그는 승려 사회에서 추방당해 불교가 지배하던 그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천민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갔다. 천민 마을 사람들은 전에 ‘원효대사’라는 높은 이름을 가진 그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바닥까지 추락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그를 자신들의 친구로 받아들였다. 원효는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천민 사회로 들어갔다. 신라는 ‘원효대사’라는 위대한 스승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원효는 천민 사회에서 그들과 어울리며 깡패, 술꾼, 사기꾼, 도둑, 백정, 기녀들과 친구로 지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천민 사회에 살던 사람 중에 자기 스스로 스님이 되겠다는 사람도 나타나고, 살인이 줄어들고, 놀고먹던 깡패는 열심히 일을 하고, 대낮에도 술 취하 길거리에서 드러누워 자던 사람은 술에 취하지 않고, 도둑질하는 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효는 화작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스스로 실천했다.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했을까? 삼국유사 권4 <사복불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사복(蛇卜)은 흔히 사동(蛇童)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땅꾼 즉 뱀을 잡아서 팔며 먹고사는 사람을 말한다. 

  원효가 살던 천민 마을에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던 한 여인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열 살이 되어도 잘 일어서지도 못하고 말도 잘하지 못했다. 후에 땅꾼이 되었고 말은 간단한 정도로만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이 사복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복은 친하게 지내던 원효에게 가서 어머니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당시 신라 사회에서는 천민이 죽었을 경우 묘를 쓰거나 관을 만들어 묻지도 못하고 그냥 산속에 갖다 버려야 했다. 사복은 원효와 함께 어머니를 거적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 산으로 향했다. 


  사복이 원효에게 “너는 그래도 전에 승려였으니 어머니 극락왕생하실 수 있도록 염불이나 좀 해라”고 말했다. 이에 원효는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은 괴로움이요. 죽지 말지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라고 했다. 


  이에 사복은 “야, 이 먹물 같은 놈아, 말이 너무 길다. 간단히 해봐”라고 하니 원효는 세 글자로 “생사고(生死苦)”라고 했다. 즉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라는 뜻이다. 이에 사복은 마음에 드는 듯 만족해하며 “옛날 석가모니가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도다. 지금 또한 그러한 자가 있어 연화장(蓮花藏)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네”라는 말을 원효에게 남기며 어머니를 따라 열반에 들었다. 후에 사람들은 사복을 기려 도량사를 짓고 다음과 같이 노래를 남겼다.


 “깊은 못처럼 잠자는 용이 어찌 등한하랴

  떠나면서 읊은 한 곡 간단하기도 하다

  고달프구나, 생사는 본래 고통만은 아니니

  연화장 떠도는 극락세계는 넓기도 하네.”


  원효가 천민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수행의 가장 높은 단계인 화작이 가능했다.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러한 화작의 단계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원효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승려의 길을 스스로 파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화작이 가능했고 천민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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