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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19. 2022

장미가 아름다운 이유


  나의 삶은 주인은 누구일까? 나일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일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 항상 다른 사람을 의식하곤 한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의해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 동물이나 식물은 결코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뿐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타인의 의식에 자유롭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올곧이 살아가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결코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성을 상실하게 된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잃어갈수록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을 심지어 ‘나의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장미의 고유함 때문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장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지키고 있기에 장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장미가 그 고유함을 잃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장미가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고유함을 잃는다면 우리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나의 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따라간다면 그는 자신의 고유함을 잃는 것이고, 온전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장미는 장미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경이로울 수 있다. 타인이 가는 길,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길,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며 그러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갈 때 나의 존재의 아름다움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비교의식은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결코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나의 의식에 스며들었을 뿐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러한 비교의식은 나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건 말건 그건 나의 인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의 삶의 주인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내가 될 때 진정한 나의 고유한 삶이 보장되고 아름답게 될 수 있다. 장미가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장미는 결코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하건 그러한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다른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건 상관하지 않는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야 나의 삶이 장미처럼 우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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