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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21. 2022

인지기능 검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듭되는 고민으로 뒤척이다 보니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검사를 할 것인지 결정을 하고 잠을 자려고 했는데 결국 마음의 결정이 서지 않았다. 나 자신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잠깐 잠이 들었나 싶더니 다시 눈이 떠졌다. 용기를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향했다. 아버지에게는 그냥 정기적으로 하는 건강 검진인데 연세가 있으셔서 추가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 눈치채지 않도록 하느라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검사가 끝나고 나오시는 것을 보고 그나마 안도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냥 정기 검사라는 내 말만 믿었던 것 같았다. 


 이틀 후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아버지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 혼자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과 검사 결과를 같이 확인했다. 뇌 MRI 찍은 것부터 살펴보았다. 해마 부분은 이미 손상되어 알츠하이머임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로 진행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인지검사 한 결과도 일일이 의사 선생님과 살펴보았다. 결과를 살펴보던 나는 왠지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결과를 모두 확인하고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다른 방법은 없고 기억력 저하를 늦추어 주는 약을 먹는 것이 그나마 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1년 전에 아버지의 뇌졸중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조그만 기적을 경험했었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하면 어느 정도는 상대적으로 늦출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약 처방을 부탁드리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아버지께 결과가 간단해서 아버지는 특별히 의사 선생님 뵙지 않고 집에 가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요즘 들어 거짓말을 종종 하곤 한다. 아버지께 그리고 어머니께. 


 외부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잊지 않고 드실 수 있도록 식탁 위에 정리해 놓았다. 어머니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말씀드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어머니께서 안도하셨다. 


 요즘 나는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약을 먹는 것 말고도 다른 것을 찾아보고 있다. 아무래도 방 안에 누워계시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활동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이것저것 방안을 궁리 중이다. 


  아버지께 하루에 한 번씩 점심 드시고 나서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꼭 산책하면서 운동하라고 했다. 껌을 20통 들어 있는 한 박스를 사다 놓고 식사하고 나면 꼭 한 개씩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피스타치오를 많이 사다 놓고 일일이 손으로 까서 하나씩 드시라고 했다. 집 안에 있을 때도 운동 기구로 간단한 운동도 하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는 재미난 이야기나 유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망상, 우울함,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기 위해 나 스스로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말씀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밤에 수면장애가 있으신 것 같아 낮에는 되도록 잠을 주무시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 마음이 아플 뿐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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