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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22. 2022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유능한 판사였다. 친절하며 예의도 바르고 모든 사람에게 인기도 많았다. 좋은 집안의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도 했다. 공직에서 승승장구하며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일찍 올랐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내의 임신으로 인해 바뀌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질투하고 트집을 잡는 아내와 가정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일을 핑계로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가정보다 일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판사로서 성공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고, 비록 신혼하고는 다르지만,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길을 걸어왔건만, 그의 병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죽음이 그에게 그렇게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는데, 이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자리까지 왔는데, 이제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더 이상 그에게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동안 그 많은 노력을 한 결과가 결국 죽기 위한 것이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아내와 아이들을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죽음의 고통은 점점 다가오고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죽더라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잠시 동안만 슬퍼할 뿐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으로 즐겁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죽음, 오, 죽음! 그러나 남들은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나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유 있게 삶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내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산을 오르는 것으로 보였겠지. 그러나 내 삶은 사실은 항상 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반 일리치였다.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참회하고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리자, 동료 판사들은 자신들의 승진과 월급이 얼마가 인상될지 계산하느라 바쁘기만 했다. 일리치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리치의 후임으로 다른 사람이 지명되고, 그 사람이 있던 자리는 또 다른 사람이 지명되어 사람들은 그렇게 승진을 하고 월급이 조금씩 올라갔다. 이반 일리치와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일리치의 죽음은 자신의 것이 아닌 특수한 경우라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일리치처럼 언젠가는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내용이다. 우리는 산을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이반은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길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건만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달았을 뿐이다. 


  삶의 공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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