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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25. 2022

공자는 왜 위대해졌을까?

역사에 의하면 요가 임금이 된 것은 기원전 2390년이다. 요임금은 백성들과 똑같이 초가집에서 살면서 집도 제대로 꾸미지 않았다. 마음을 항상 백성들에게 두고 굶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식사를 하지 않았고, 추위에 떠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같이 떨었으며 죄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처단하지 않고 자신도 죄인처럼 괴로워했다고 한다. 요가 제위에 있는 50년 동안 태평성대가 유지되었으며 이로 인해 문화도 크게 발달하였다. 한자가 만들어진 것도 이 시기라고 한다. 요임금이 나이가 들어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보니 자기 아들인 단주는 어리석어 임금으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여 순이라는 현자를 불러 보위를 물려주었다. 


  순임금 또한 제위에 있으면서도 새벽에 일찍 밭에 나가 농사를 지었고, 물가에 가서 물고기를 열심히 잡으니 사람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당시 수도는 산서성의 평양이었는데 여름이 되면 황하가 범람하여 백성들이 큰 피해를 보곤 하였다. 이에 순임금은 우와 함께 치수공사를 하여 이를 해결하였다. 4천 년 전의 일이니 순임금이 얼마나 지혜로운 왕이었는지 여실히 증명되는 사실이다. 순임금에게도 상균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나 치수공사에 공이 크고 자신의 아들보다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우에게 보위를 물려주게 된다. 중국의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였던 때가 바로 요순시대였다.  


 공자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중용 7장에서 공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子曰人皆曰予知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 也人皆曰予知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순임금처럼 지혜롭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물과 덫, 함정 가운데에 몰아넣어도 피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사람들이 나를 지혜롭다 말하되 중용을 택하여 한 달을 지킬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공자를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가장 지혜로운 순임금에 비교를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은 그러한 인물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동양의 역사에서 공자만한 위상을 차지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공자는 요순보다 더 위대한 인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공자가 위대해진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재보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공자는 죽은 날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었으며, 더욱 성숙할 수 있도록 부단하게 노력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제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많은 이들이 이미 공자에 대해 우러러보고 있음에도 자신은 중용을 한 달 이상 지킬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의 내면의 성숙함이 그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제자인 안회보다 자기가 더 부족한 인물이라고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겸손함과 객관화가 그를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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