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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27. 2022

사라예보의 첼로 연주자


https://youtu.be/-PrtyiBNo7A



보스니아의 전체 국민 수는 약 400만 명으로 그중 48%가 보스니아계, 37%가 세르비아계, 14%가 크로아티아계, 나머지 1%가 루마니아와 유대계이다.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은 국토의 가운데 부분에 주로 살고 있으며, 그 둘레에 세르비아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991년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해체되기 시작한다. 1991년 6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하여 제1차 유고 내전이 시작된다. 그해 9월 마케도니아도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 연방은 사실상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991년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연대하여 유고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기로 결정하고 1992년 3월 국민투표로 이를 확정하였다. 이에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자체를 거부하고 보스니아로부터 독립할 것을 주장했다. 


  1992년 4월 EU가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자 세르비아계는 이에 반발한다. 신유고연방군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계는 수도인 사라예보에 포격을 감행하면서 제2차 유고 내전 즉,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었고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국토의 70%를 점령한다. 이에 유엔은 1992년 5월 세르비아에 대해 전면적인 제재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세르비아계는 이에 반발하여 소위 ‘인종청소’라는 만행을 저지른다. 무자비한 피의 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유엔은 1992년 8월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으나 세르비아의 무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5년 3월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상대로 중재에 나섰고, 그해 12월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3년간의 내전에서 20만 명이 죽었고 2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여 보스니아 국민 절반 이상이 삶의 기반을 잃어버렸으며 보스니아는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 보스니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가 공화국으로 구성된 1 국가 2 체제가 된 상태이다.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2년 5월 27일, 수도인 사라예보 거리에 한 명의 첼리스트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전날 포격으로 인해 무고한 22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애도를 위한 것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포격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부서진 잔해 속에서 홀로 자신의 첼로를 연주하였다. 그는 사라예보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였다. 세르비아군대와 보스니아 군인들도 이 모습을 보고 사격을 멈추었다. 


많은 사람이 희생된 전날의 사건으로 공포와 슬픔에 잠겨 있던 사라예보 시민들은 그 음악을 듣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인종청소가 잔행되었던 피로 물든 거리에 잠깐이지만 평화가 찾아들었다. 스마일로비치가 연주한 곡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였다. 조용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선율은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혹자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누군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그렇게 아무런 죄도 없이 세상을 떠난 그들의 영혼을 잠시나마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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