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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27. 2022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리다 칼로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총명하였다. 그녀는 멕시코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에스쿠엘라 국립 예비학교에 진학했다. 이 학교에서 전교생 2,000명 중 여학생은 35명이었다. 그녀는 의대생으로서 생물학, 해부학 등을 공부했다. 하지만 의사가 되려던 칼로의 꿈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고, 그 버스는 전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그녀는 쇄골, 갈비뼈, 등뼈, 팔꿈치, 골반, 다리의 골절상을 입었다. 오른발은 으깨어졌고, 왼쪽 어깨는 탈구되었다. 더 큰 문제는 전차의 쇠 난간이 왼쪽 엉덩이를 관통하고 골반 아래 허벅지로 빠져나오는 중상을 입었다.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의사들은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칼로는 사고 이후 9개월을 전신 깁스를 한 채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의사가 되기는커녕 이제는 아무것도 꿈꿀 수 없었다.


  오랜 기간의 치료로 인해 간신히 회복은 되었지만, 그녀는 의사의 꿈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서 회복하며 보내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었다. 깁스를 하고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있으려니 너무나 지루해서 아무거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할 수 있는 것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정도밖에 없었다.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그녀를 위해 어머니가 주문 제작한 이젤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친 등뼈를 고정하기 위해 석고 코르셋을 착용했다. 무릎에 소형 이젤을 올려놓고 머리 위 침대 지붕 덮개에 거울을 매달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건 너무나도 자주 외로워지기 때문이었다.” 

  칼로는 수많은 수술과 회복을 하며 커다란 고통 속에서도 외로움을 달래며 그렇게 하루하루 그림을 그려 나갔다. 시간이 지나며 칼로는 멕시코 전통 속에 고독과 고통을 담아내어 그 어떤 미술 범주에도 들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냈다. 그녀의 부서진 마음의 고통은 그렇게 미술로 승화되었다. 칼로는 장애인과 고통받는 자들의 신화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하지만 1940년대 말부터 그녀의 건강은 악화되어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 차례의 척추 수술은 실패로 이어졌다.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 지내야만 했으며 그 외 시간에는 휠체어에 기대 간신히 앉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높이 날아오를 날개가 있는데 발이 왜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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