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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30. 2022

결혼 60년

한 달 정도 지나면 부모님이 결혼한 지 꼭 60주년이 된다. 2년 전부터 두 분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 결혼 60주년 되는 날이 꼭 오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소원했다. 작년 여름엔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냥 6~7개월 당겨서 축하를 해드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한테 또 다른 일이 터져 그런 생각 할 여유도 없었다. 


아버지 중학교 1학년, 어머니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피난 가느라 학교도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어머니는 간신히 초등학교 졸업을 하셨고, 아버지는 중학교 졸업을 하시고 바로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셨다. 두 분의 학력은 어머니는 초등학교, 아버지는 중학교가 전부다.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경남 마산에 가서 일본 사람에게 사진 기술을 배우셨다. 어릴 적 짓던 농사가 끔찍하게 싫어 무조건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판단하셨다. 어느 날 우연히 마산 토박이 건달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깡패에게 두들겨 맞는 바람에 아버지는 청주로, 작은아버지는 서울로 도망가서 조그만 사진관을 열고 돈을 벌기 시작하셨다. 


증명사진을 찍으러 찾아온 어머니에게 반한 아버지는 며칠 후 사진을 찾으러 온 어머니 뒤를 따라 어머니 집까지 가셨다. 집 근처에서 대조병들이 정종과 커다란 닭 한 마리를 사셔서 외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 술을 워낙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는 그 정종을 아버지와 다 마시고서는 어머니를 데리고 가서 같이 살라고 하셨다. 집안이 가난했기에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딸들을 모두 20세 전에 출가시키셨다. 


바로 결혼을 하시고 청주 내덕동에 신혼집을 구하셨다. 당시 내덕동은 청주에서는 상당히 외곽지역이었다.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고 집 몇 채뿐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 하나도 없기에 거의 무일푼이어서 조그만 초가집을 얻으셨다. 거기서 누나와 형이 태어났고 몇 년이 지나 돈을 어느 정도 버시고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사한 후 내가 태어났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같이 잤다. 아버지가 맨 아랫목, 그다음 어머니, 나, 형, 누나 순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60년이 된 것이다. 


사실 부부가 60년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우리 집안은 장수하는 편은 아니다. 아버지 위로 모든 남자는 전부 60세 전후에 돌아가셨다. 둘째 큰아버지가 술 담배를 별로 안 하셔서 그런지 좀 더 오래 사셨는데 70은 넘기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안에서 남자가 80세를 넘긴 것은 아버지가 최초이다. 부모님이 평상시 그리 건강하신 편도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두 분 모두 큰 병들이 있으셨다. 아버지는 전립선암 말기, 뇌경색 등으로 고생하셨고, 어머니는 자궁암, 양쪽 무릎 인공관절, 대장암 말기였다. 하지만 그 고비들은 다 넘겼다. 최근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초기이긴 하지만 병원에서 일단 약으로 치료하기로 했다. 


결혼하고 60년을 같이 살았다고 하면 두 분의 성격이 좀 비슷하고, 잘 맞을 것 같지만 내가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성격이 완전히 반대시다. 두 분이 서로 좋아하는 것도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반했지만,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맨날 농사만 지라고 해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싫어서 그냥 시집온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사는 것 보면 부부 싸움도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내가 어렸을 때 두 분은 틈만 나면 싸우셨다. 소리도 질러가면서 할 말 못 할 말도 다 하시면서 그렇게 싸우셨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두 분이 부부 싸움을 하시면 그때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싸우고 나면 꼭 교회에 가신다. 가셔서 기도를 하고 오시는지 완전히 달라져서 집에 들어오신다. 아버지는 뭐든지 잘 잊으신다. 건망증은 아닌 것 같은 데 어머니하고 싸우고 나서 한 시간도 안 돼서 전혀 싸우지 않은 사람같이 변해버리신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어머니에게 반찬하고 국을 아버지 드시고 싶으신 거 하라고 요구하신다. 한 번 이렇게 부부 싸움을 하시면 얼마간은 아무 일 없다가 며칠 지나면 또 싸우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또 교회에 가신다. 그런 무한한 반복이 60년이 되도록 계속되었다. 


두 분의 기호가 너무 다르다. 음식부터, 취미까지 비슷한 것이 별로 없다. 영화관에 가면 어머니는 영화를 감상하고 아버지는 사진에 관심이 있으니 어머니에게 혼자 보라고 하신 다음 영사실에 가서 기계 돌아가는 것만 구경하다가 영화 끝나면 같이 나오시곤 하셨다고 한다. 


사랑은 변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은 감정이기에 언제든지 변하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가면 사랑했던 사람이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정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두 분이 사시면서 여러 가지 커다란 고비도 많으셨을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사랑 자체가 변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겠는가? 사람도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는 상황에 처음 만났을 때의 그러한 사랑의 감정이 유지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사랑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많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도 많이 못 하셨고, 물려받은 것도 하나도 없었고, 성격도 다르고, 부부 싸움도 많이 했고, 기호도 다르고, 비슷한 것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꼬박 60년을 함께 살아오셨다. 


요즘 내가 부모님을 볼 때 느끼는 것은 이제 두 분은 완전히 한 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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