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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31. 2022

강한 자는 얼마나 될까?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력고사가 며칠밖에 남지 않아 교실에서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책을 보고 있었는데 우리 반으로 다른 반 아이 몇 명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중의 한 명은 당시 우리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고, 이름만 들어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두려운 존재였던 아이였다. 그 아이를 싸움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3학년 통틀어 720명 중 아무도 없었다. 얘네들이 왜 우리 반에 들어오나 싶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교실로 들어와 천천히 걸어오는 데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왜 이쪽으로 오는지 의아했는데 순간 머릿속으로 어떤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다.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아이는 나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고, 한 번도 말을 걸어 본 적도 없었다. 전교생이 그 아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워낙 힘으로 유명하니 누구나 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나를 전혀 모를 것이다. 나야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오던 그 아이들은 내 책상 주위로 다가와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가장 잘 싸운다는 아이가 대뜸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 이름을 대니까 “맞네” 하고는 자신의 오른쪽에 서 있는 아이의 등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 오른쪽에 서 있는 아이가 자기하고 친한 아이인데 학력고사 보는 날 내 뒤 바로 오른쪽 줄 옆에 앉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학력고사 보는 날 1교시부터 전 과목을 다 보여주라는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앞이 하얘졌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학력고사 보는 날만 바라보며 공부를 해 왔는데 그날 이러한 일로 시험을 망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웠다. 내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으니 갑자기 나더러 화장실 뒤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냥 그 아이들에게 끌려서 화장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데리고 나온 아이들은 담배를 꺼내 물더니 연기를 내뿜으며 학력고사 보는 날 만약 보여주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식으로 나에게 강압을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힘이 없었다. 고등학교 내내 싸워본 적도 없었다.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전교생을 통틀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 없었다. 얼른 그 자리라도 피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수업 종이 울렸다. 다시 한번 그 아이들의 강압을 듣고는 뛰다시피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교실에 돌아와서는 걱정이 많이 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담담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냥 어떻게 되겠거니 하며 내가 할 일만 했다.


학력고사 보는 날 고사장에 들어가 보니 정말 내 자리 바로 뒤 오른쪽 옆줄에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내 자리 앞, 뒤, 오른쪽, 왼쪽은 시험지 유형이 다르지만, 그 아이가 앉아 있는 자리와 내 자리의 유형은 같은 것이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시험 잘 보고 확실히 답안지를 옆으로 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1교시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담담히 시험을 보았고, 그 아이가 요구한 대로 답안지를 오른쪽으로 빼서 그 아이가 잘 볼 수 있도록 펼쳐 놓았다. 나는 그것이 부정한 일인 줄 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보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 후환이 두려웠다. 보여주기는 하되 그것으로 인해 내 시험을 망치지 않는 것이 나의 최선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부정행위가 정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정의는 힘이 없이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1교시가 끝났다. 그 아이가 나에게 오더니,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 잘 보였던 것 같았다. 다시 2교시가 시작되었다. 수학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문제를 풀다 보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를 푸느라 잘 몰랐는데 시험 감독관 선생님이 계속 내 옆에 서 계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그 자리가 좋아서 서 계시는 줄 알았다. 문제를 다 풀고 답안지 작성을 하고 나서 답안지를 오른쪽 옆으로 내놓으려고 하는데도 그 선생님은 계속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 계시는 것이었다. 그것도 나와 그 아이 사이를 완벽히 가로막고 서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내 답안지를 보고 싶어도 그 선생님에게 가로막혀 전혀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선생님이 고맙게 느껴졌다.


내 생각에는 선생님이 1교시 말이나 2교시 시작할 때쯤 눈치를 채시고 아예 감독관 2명 중 한 명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으려고 상의를 한 듯싶었다. 학력고사는 한 번밖에 기회가 없고, 당시에는 대학 입학 원서도 전기에 한 군데만 쓸 수 있고, 전기에서 떨어진 학생은 후기 대학 역시 한 군데밖에 원서를 쓰지 못했다. 재수생까지 합쳐서 100만 명 가까운 수험생이 있었고, 4년제 대학 정원은 전국 합쳐서 약 10만 명, 2년제 전문대학은 8만 명 정도였다. 만약 학력고사에서 부정행위로 적발되면 그 아이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두 분이 상의하셔서 나와 그 아이 사이에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교시 끝나는 종이 울렸다.


2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아이는 교실 밖으로 나갔고 나는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 3교시 준비를 했다. 3교시가 시작되기 전 그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2교시 답안지를 분명히 하나도 못 봤을 텐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일만 했다.


3교시가 시작되었다. 시험지와 답안지가 배부되었고, 시험이 시작되자 감독 선생님 중 한 분이 또 내 옆에 오셔서 그 아이 사이를 막고 서 계시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이 확실함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시험을 4교시까지 마칠 수 있었다.


중용 10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子路問强 子路孔子弟子仲由也子路好勇故問强

자로가 강함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子曰南方之强與北方之强與

남방의 강함인가? 북방의 강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너의 강함인가?

 

寬柔以敎不報無道南方之强也君子居之

너그럽고 부드럽게 가르치고 무도한지를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는 거기에 있다.

 

衽金革死而不厭北方之强也而强者居之

창검과 갑옷을 깔고 누워 죽어도 싫어하지 않음은 북방의 강함이니 너같이 강한 자가 거기에 있다.

 

故君子和而不流强哉矯中立而不倚强哉矯國有道不變塞焉强哉矯國無道至死不變强哉矯

그러므로 군자는 남하고 어울리나 나쁜 데로 새지 않으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가운데 서서 기울지 않으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있음에 궁색했을 때의 지조가 변하지 않나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음에 죽음에 이르러서도 지조가 변하지 않으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강한 자란 어떤 사람일까? 분명한 것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는 자는 결코 강한 자는 아닐 것이다. 힘없는 자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 또한 분명히 강한 자는 아닐 것이다.


중용은 남하고 어울리나 나쁜 데로 새지 않는 자, 가운데 서서 기울지 않는 자, 나라에 도가 있음에 궁색했을 때 지조가 변하지 않는 자, 나라에 도가 없음에 죽음에 이르러서도 지조가 변하지 않는 자를 강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와 같이 중용에서 말하는 강한 자 말고도 다른 종류의 강한 자도 우리 사회에는 필요한 것 같다. 나같이 힘없는 사람을 지켜주는 강한 자는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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