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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02. 2022

아버지의 기능사 자격증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필요한 책을 찾느라 시간이 한참 걸리곤 한다. 그 책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이 책장, 저 책장 뒤져보다가 빛바랜 아버지의 기능사 자격증 패가 눈에 띄었다. 뽀얀 먼지에 싸여 있길래 꺼내서 물티슈로 깨끗이 닦다가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사진 기능사 3급, 1975년도에 발행된 너무나 평범한 자격증이었다. 30대 아버지의 모습이 사진으로 함께 새겨 있었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 오래된 사진이 하던 일을 멈추게 한 채 생각에 잠기게 했다. ‘저 자격증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셨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마음속으로 떠올랐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0대 중반부터 사진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일본인에게 사진 기술을 배우셨다. 오래도록 다른 사람 밑에서 일을 하다가 간신히 돈을 모아 조그만 사진관을 하나 차리셨다. 아침을 드시고 나면 저녁 늦게까지 손님이 있건 없건 사진관을 지키셨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시느라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잤던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나 방을 나가보면 우리 집 마루에는 사진 수십 장이 기다란 줄에 걸려 있었다. 밤새 작업한 사진을 말리느라 걸어놓으신 것이었다. 어떤 날은 학교 앨범을 만들기 위해 찍은 학생들 사진으로 수백 장이나 되는 것을 일일이 가위로 자르고 다듬느라 정신없이 일하시곤 하셨다. 


  아버지의 일하던 그런 모습은 내 뇌리에 새겨져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예전에 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다니던 분들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은 왠지 무겁고 착잡했다. 그분들이 다 나의 아버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아버지는 사진 찍기에도 힘에 부치신 지 당신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거의 정리하셨고, 몇 개 남은 것은 나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신다. 워낙 옛날 수동식 카메라이기 때문에 나는 조작조차 할 수 없지만, 소중히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에 해당되는 물건은 내가 모두 영원히 간직하려고 한다. 오늘 책을 찾다가 본 아버지의 기능사 자격증도 내가 소중히 보관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하고 별것 아닌 듯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남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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