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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05. 2022

대중목욕탕


어릴 적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곤 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수건과 비누, 때수건을 들고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갔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다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끔씩 등산을 할 때 아버지가 손을 잡아준 적은 있지만, 평상시 걸어가면서 손을 잡고 다닌 적은 없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는 모르나 나 같은 경우 아주 어릴 때도 부모님이 뽀뽀 같은 것을 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뽀뽀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랐다. 세대 차이라고나 할까? 


  우리 집이 있는 동네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한 10분 정도 걸어가야 시내가 시작되는 곳에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아버지는 토요일까지 일하시느라 일요일이 아니면 시간이 없었기에 일요일 아침 먹기 전에 목욕을 마치고 와야 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목욕탕은 항상 북적였다. 아버지가 빈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으면 나는 바로 그 옆에 앉아 앞에 있는 거울의 수증기를 닦아내고 미지근한 물을 몸에 뿌리곤 했다. 뜨거운 물이 가득한 열탕에 들어가기가 왜 그리 싫었던지 아버지가 억지로 잡아끄는 손에 붙잡혀 간신히 들어가긴 했지만, 앉아 있는 것이 나에겐 커다란 고통이었다. 때가 불어야 한다며 못 나가게 하는 아버지의 엄포에 어쩔 수 없이 앉아 있기는 했지만 때가 불건 말건 조금이라도 빨리 열탕을 벗어나고픈 마음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살 살피다가 이 정도면 아버지한테 혼이 나지 않을 것 같은 타이밍에 잽싸게 열탕에서 뛰쳐나오곤 했다. 


  때수건으로 때를 밀어보면 왜 그리 때가 많이 나오는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그 시절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하고 산으로 들로 뛰어놀러 다니기 일쑤였으니 매일 땀이 나지 않는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종일 뛰어놀다가 집에 오면 세수만 하고 저녁 먹고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나니 때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샤워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었다. 샤워라는 자체를 아예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대학 때 조그만 방 하나 얻어 자취를 했는데 당시 샤워 시설이 있는 대학 자취방이 어디 있었겠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연탄을 갈아야 했고, 겨울에는 그 연탄불에 물을 데워서 세수를 하는 정도였다. 


  미국에 가서야 샤워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샤워를 하는 것이었다. 나만 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이제는 매일 샤워를 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하지도 못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에서 아버지와 한 시간 정도 때를 밀고, 비누로 머리도 감고 그렇게 다 씻고 나서 목욕탕 밖으로 나오면 어찌나 개운하던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버지는 목욕이 끝나고 나면 유리병에 든 흰 우유를 하나씩 사주곤 하셨다. 그때 마셨던 흰 우유가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지금은 우유를 마셔도 그런 맛이 잘 나지 않는다. 


  이제는 아버지와 목욕탕을 같이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아버지는 이제 피부가 너무 약해 때를 밀 수도 없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수도 없다. 아버지 등을 밀어 드린 적이 언제였던가? 더 이상 나에게 아버지 등을 밀어줄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 가던 일이 왜 이리 그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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