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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13. 2022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의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뒷마무리를 해주는 사람이 본 죽음의 여러 가지 모습에 관한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죽음은 항상 우리 주위에 존재하며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분명한 일이다.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길래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너무나 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착하다고 해서 그들이 알아주기나 하는 것일까? 마음이 착한 사람이 오히려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힘에 부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때때로 부유한 자가 혼자 살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자살을 고독사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 일단 논외로 하자. 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이생에서 가난은 죄라도 되는 것일까? 가난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노력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도 돈이 없으면 그를 외면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죽음은 모든 이에게 있어 평등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 누구라도 자기만의 절실함 속에서 이 세계를 맞닥뜨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치의 이면에는 어릴 때부터 뼈에 사무친 경제적 결핍감이, 사랑의 소품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하려는 마음 밑동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뿌리를 내린 채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생에서 모든 것이 주어지지도 않고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경제력과 누군가로부터의 따스한 사랑이라도 받는 것마저 거부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버림받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들에게는 이생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있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왜 우리는 매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삶에서 이루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다른 무엇보다 현재인 오늘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삶이 경이로운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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