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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14. 2022

나, 황진이

김탁환의 <나, 황진이>는 일인칭인 황진이의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을 역사 속 그녀의 관점에서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 남은 기를 꽃바람처럼 흩어 버리시던 날, 스승은 연못에 가겠노라 고집하였지요. 꽃못이라는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관산 자락에는 홍진에 묻힌 세월을 씻을 아름다운 연못이 많습니다. 스승의 포류 같은 몸은 나비보다도 더 가벼웠지요. 30년을 넘게 입은 갖옷 한 벌 벗어 두고 훨훨훨 날아가 버리시지나 않을까. 따르려 했지만 가만히 손등을 다독이며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입으로만 웃으셨지요. 허태휘에게 업혀 연못으로 향하는 스승을 배웅한 다음 방을 말끔히 치웠답니다. 이불과 요를 햇볕에 말리고 머리맡의 서책들도 다시 쌓고 방바닥 걸레질도 세 번이나 했지요. 죽음의 기운을 몰아내고픈 마음이었습니다. 허태휘의 등을 빌려서라도 목욕을 가겠다고 고집하신 까닭을 벌써부터 짐작했던 탓이지요. 지금까지의 삶처럼 단정하고 깨끗한 이별을 원하셨던 겁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스승이 내 손등을 다독일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떠날 동네의 꽃은 이미 졌고 사립문은 벌써 닫혔네요. 동행도 없이 그 먼 길을 어이 홀로 가실까. 새 이부자리를 펴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역사적으로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황진이는 서경덕이 세상을 떠나자 기생 일을 완전히 접고 은둔하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스승이었던 서경덕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모하였기에 그러한 길을 선택했었던 것이 아닐까? 신분이나 나이는 진실된 사랑 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장차 죽으려는 새는 그 울음이 슬프고 장차 죽으려는 사람은 그 말이 착하다고 했던가요. 세상을 향해 침 뱉고 으르렁거리며 욕하고 비웃으며 지내 왔는데, 이제 그 모든 칼날을 내 안으로 들이밀어야 합니다. 다시는 찾지 않을 것 같던 서책도 뒤지고 빛바랜 서찰도 모으고 또 이런저런 인연으로 가까이 두게 된 물건들도 한 번씩 쓰다듬어 보았답니다.”


  황진이는 서경덕을 떠나보낸 후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내려놓은 듯 보인다. 세상에 대한 어떤 정열이나 욕망도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그녀의 마음속에 있었던 사람을 그리워하며 삶을 천천히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열여덟 살 먹은 눈먼 기생이 사내에게 버림받고도 아이를 지우지 않고 사흘 밤낮을 고생한 끝에 딸을 낳았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신이한 일도 아니지요. 세상에 나온 아기는 박연의 폭포수처럼 큰 소리로 울었다는군요. 위대한 도를 찾아 헤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그때 벌써 알았던 걸까요”


  황진이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맹인 기생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양반으로 알려졌으나 그녀의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다. 외할머니도 계시지 않아 외할머니의 여동생이 황진이를 키웠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여동생 또한 송도의 관기였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듯 기생과 정숙한 여자를 또다시 나눈다고나 할까요. 이런 구분 자체가 가소로운 것이지요. 세상에는 자기를 완성시켜 가는 인간과 자기를 파괴시켜 가는 인간, 이렇게 두 부류가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따라 늙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앙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지요. 한순간의 만족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황진이는 세상도 읽을 수 있었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운명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과 끝, 가장 존엄한 자와 가장 미천한 자, 기쁨과 슬픔의 짝을 맞추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몰랐던 겁니다. 내 전부를 쏟아부었지요. 천포창에 효험이 있다는 풍문만 들리면 집 팔고 땅 팔고 노래 팔고 웃음을 팔아서라도 구해 왔어요. 천지가 불인(不仁)하고 성인이 불인하다고 해도, 눈멀고 사랑 잃은 여자를 저렇게 죽이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더 참되고 더 부지런하게 백업을 쌓은 이가 불쌍하게 사라지는 것이 하늘의 법도라면, 그러한 법도는 지키고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황진이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철저히 거부했다. 눈먼 기생으로서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키웠기에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하지만, 죽음에 예외는 없기 마련이기에 어머니를 잃은 황진이는 커다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리고 만다. 


  파란만장한 황진이의 삶은 그녀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였고, 이를 또한 나름대로 바꾸어 보려 노력하였기에 그녀의 삶이 숭고한 것이 아닐까? 그녀를 한낱 조선 최고의 기생이라고만 본다면 이는 삶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다.


  삶은 모든 것과의 만남이다. 이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겁낼 이유도 없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모든 것을 경험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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