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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14. 2022

부모님과 마라도에서

제주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배를 탔다. 파도가 거칠면 부모님이 힘드실 것 같아 걱정이 됐었는데 바람이 그리 거세지는 않았다. 모슬포항을 출발해 조금 지나니 가파도가 옆에 보였다. 가파도는 생각보다 큰 섬인 듯했다. 우리가 탄 여객선은 모슬포항을 출발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마라도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 80이 넘으신 부모님도 이곳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다행히 뱃멀미도 전혀 없으셨고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현규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너무 잘 챙겨주어서 내 마음도 든든했다. 


 마라도 선착장은 온통 주위가 새까만 현무암으로 가득했다. 화산이 폭발했던 그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고 육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검은색의 절벽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선착장에서 마라도에 내려섰는데, 바람이 너무나 거세게 불어왔다. 여객선에서 느낀 바람보다 몇 배는 더 세서 순간 당황했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데 마라도는 항상 바람이 그 정도로 세다고 했다. 


  아버지가 순간 많이 당황하신 듯했다. 거센 바람에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가 내린 선착장은 마라도의 북쪽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기념비가 있는 마라도의 남쪽까지 가려면 15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마라도 내에는 이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만 탈 수 있는 조그만 수송용 차가 있지만, 관광객들은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기념비까지는 걸어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현규와 내가 부모님을 가운데 모시고 거센 바람을 뚫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조금 걸으시더니 바람이 너무 거센 바람에 힘에 부치신 모습이었다. 계속 걸으실 수 있는지 여쭈어보았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기념비까지 가면 너무나 좋을 텐데 많이 아쉬웠지만, 아버지를 위해 일단 선착장에서 가까운 식당에 모시고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따스한 음료수를 일단 주문했다. 


  일정상 한 시간 지나서 들어오는 다음 여객선을 타고 다시 제주로 들어가야 했다. 그 여객선이 그날의 마지막 제주로 돌아가는 여객선이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하고 식당에 있을 테니 현규하고 기념비석에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께 그 기념비에서 사진이라도 찍어드리려고 마라도까지 온 것인데 너무 아쉬웠다. 현규도 마라도가 처음이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다시 마라도에 올지 알 수가 없었기에 일단 현규를 데리고 ‘대한민국 최남단’이 새겨진 기념비석으로 향했다. 15분 남짓 걸렸지만, 바람이 워낙 세서 나조차도 걷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걸으면서 보는 드넓은 바다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가는 길에 우리나라 최남단 성당과 교회도 있었다. 현규와 기념비석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부리나케 부모님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따스한 차를 드셔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조금 안정된 모습이셨다. 아직 여객선이 오려면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어서 아버지께 다시 기념비석을 가보시겠냐고 여쭈어보니 어머니라도 모시고 가서 구경시켜 드리라고 하셨다. 현규에게 아버지하고 있으라고 부탁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기념비석으로 향했다. 자칫 시간이 늦어 여객선을 놓칠지도 모르니 시계를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씩씩하게 잘 걸으시며 갈 수 있었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기념비석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최남단” 기념비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께서도 80을 사시면서 처음 와보는 곳이라 그런지 조금은 흥분된 듯한 모습이셨다. 너무나 만족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내 마음도 벅차올랐다.


 지난 2년 동안 아버지의 전립선암 수술, 아버지 뇌경색, 그리고 어머니의 대장암 수술로 정신이 없었다. 두 분 모두 말기암이었지만 수술도 잘 되고 많이 회복이 되셔서 이렇게 마라도까지 올 수 있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할 뿐이다. 두 분이 더욱 건강하기만을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 올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하늘이 내려 준 축복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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