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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17. 2022

보르네오섬에서 있었던 일


1950년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 년 내내 무더운 날씨인 보르네오 섬의 한마을에 말라리아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말라리아는 사실 매년 유행하지는 않는다. 한번 유행하고 나면 얼마간은 잠잠하다가 다시 시간이 지나 유행하곤 한다. 대부분이 전염병이 그렇다. 전염병의 본질이라고나 할까? 오랜 기간 계속되는 유행병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름 자체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유행은 어느 시기에만 집중된다.


인도네시아는 당연히 말라리아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힘으로 부족하여 세계 보건기구(WHO)에 도움을 청했다. 세계 보건기구에서는 당시 가장 강력한 살충제인 DDT를 그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곳에 뿌리기로 결정한다. 단기간의 효과를 보고자 함이었다. DDT를 대대적으로 살포하자 극성을 부리던 모기는 모두 죽고 말라리아는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DDT를 살포하고 나서 전에 없던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이엉을 얻어 만든 지붕이 너덜거리더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몇몇 집의 지붕의 문제가 아니라 동네에 있는 모든 집들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유를 밝혀보니 이는 지붕의 이엉 속에 사는 굼벵이 때문이었다.


DDT 살포로 인해 모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벌도 덩달아 거의 죽어 사라지게 되었고, 벌은 지붕의 이엉 속에 살고 있는 굼벵이가 잡아먹고 살았는데 이로 인해 굼벵이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굼벵이들은 지붕의 갈대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 버렸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갈대로 지붕을 만들지 말고 양철로 지붕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굼벵이는 양철 위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가의 지붕을 갈대로 만든 이엉에서 양철로 전부 바꾸는 공사를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열대 지방인 보르네오 섬이기에 비가 자주 내리고 어떤 때는 우리나라의 소나기처럼 맹렬한 스콜이 내릴 때는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주민들은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 커다란 문제는 DDT로 인해 다른 조그만 벌레들도 다 죽어버렸는데 그 죽은 벌레를 먹은 뱀들도 벌레 속에 있던 DDT가 누적되는 것으로 인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죽은 뱀을 먹은 고양이들도 예외 없이 다 죽어버렸다. 고양이들이 죽어버리자 그 동네에는 쥐들이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쥐의 엄청난 번식으로 인해 동네는 더 무서운 전염병인 흑사병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흑사병은 말라리아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의 유행병이다. 중세 시절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는 인구 전체의 3분의 1이 죽어 나갔다. 흑사병이 지나고 난 유럽이 흑사병 유행 전의 인구로 돌아오는 데 무려 200년이 걸렸다.


결국 세계 보건기구는 쥐들을 잡을 고양이 14,000마리를 비행기에서 낙하산에 매달아 하늘에서 고양이를 뿌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전투병의 낙하산 투하 작전이었다. 이로 인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보르네오 섬에서 말라리아가 유행할 때 물론 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자연적으로 볼 때 가장 강력한 살충제인 DDT를 살포한 것은 선을 넘은 것인지 모른다.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야 더 현명했을 것이다. 유행병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내가 무언가를 얻었다면 언젠가는 또 다른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 오늘 어떤 것을 잃었어도 나중에 다른 무엇을 얻을 수도 있다. 문제는 자신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야 하며 주인이 되려고 하는 마음은 위험할지 모른다. 이는 선을 넘는 것이다. 보다 심사숙고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은 혼돈 그 자체밖에 남지 않는다. 자신이 주인 되고자 하는 것은 좋지만 객관적인 상황을 충분히 보는 능력을 가지고 어떤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비록 오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해도 시간이 흘러 그것이 어떻게 돌고 돌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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