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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Feb 21. 2022

음지와 양지 (2월 21)

친구야,

겨울이 가고 있지만 봄은 멀었는지 아직은 많이 쌀쌀한 아침이야. 지난번에 시를 하나 썼는데 오늘 갑자기 네 생각이 났어. 너에게 그 시를 부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들었어.    

  

<음지가 양지 되어>       

   

너무 오랜 세월

빛을 보기도 힘들어     

 

춥고 축축하고

찾는 이 없어   

   

희망만 바라고

미래만 바랐던 시절     

 

이제 그 시절은 끝나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

이제 곧 양지리니    

 

 그동안 나는 음지에서 오래도록 살아왔던 것 같아. 내가 친구들 앞에 나타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잘 알 거야. 그동안 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도 않았고 누구와 함께 무언가를 같이 한 것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친구들이 그립고 만나고 싶었는데도 혼자서 외로이 햇살만 바라며 고개를 숙이며 살아왔어.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음지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나에게는 유난히 커다란 음지가 있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인생 전체를 둘러싼 음지, 부모님과 가족도 모르는 그런 암울했던 음지가 나에겐 있어.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는 못할 거야. 내가 더 나이가 들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날까지도 아마 그것은 비밀로 남아 있게 될 거야.


  그 음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곤 해. 그 눈물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닦아주는 사람도 없었지. 그 음지가 양지가 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원했는지 몰라.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크기의 인생의 음지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 같아. 음지에 있을 때는 춥고 외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양지가 될 거라고 믿기는 해. 하지만 아직도 음지가 있는 나의 삶의 한 조각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너무 우울하고 슬픈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너를 비롯해서 가까운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때 나의 그 커다란 음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해. 이야기라도 하면 조금은 따뜻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조금은 위로받고 편하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주위의 사람들이 현재의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는 아픔이나 상처가 하나도 없었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해. 정말 그럴까? 가까운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보여주지 못하는 상처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내가 가끔씩 너에게 버린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니? 내가 무언가를 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커다란 음지 때문이야.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림을 받아봤기에 가능한 것 같아. 그것도 조그만 버림이 아닌 완전한 버림. 나는 네가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가지고 있는 음지는 그렇게 크지 않고, 너는 아직 완전한 버림을 받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솔직히 말해 젊었을 때의 너의 모습을 보면 나는 너무 부러웠어.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본 너의 젊은 시절은 양지로 가득했거든. 네 주위엔 가까운 친구를 비롯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지. 게다가 하는 일도 너무나 잘 되었고. 네 주위의 공간은 내가 너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꽉 찬 공간이었던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내 마음의 창에 드리워져 있는 커튼을 의식적으로 걷어내곤 해. 조그만 햇살이라도 더 받아서 내 마음의 음지를 줄이려고 노력을 하는 거야. 그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래.


  나는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음지 가운데 있는 것이지 잘 알지는 못해. 그냥 느낌으로 또 하나의 음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만약 그렇다면 바라건대 너도 네 마음의 창에 걸려 있는 커튼을 조금이라도 열어 보려고 노력하기를 바래. 물론 그것이 힘이 들겠지만, 너무 애는 쓰지 말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이라도 햇살을 그리워했으면 좋겠어.  


  친구야,

  내가 보내는 이 편지가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아. 힘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될 거라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를 해도 너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고 그러한 말이 너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아.


  그런데도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것을 보면 나는 참 바보가 아닐까 싶어. 너는 바보 친구를 하나 갖고 있다는 것이나 알려주려고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바보처럼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그것은 내가 힘들었을 때 네가 나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어 그런 것인지도 몰라.


  네가 나에게 한 말을 너는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중했던 네가 나에게 해 준 말은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아마 그 말은 영원히 나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야. 너는 나에게 그런 힘을 주었는데 나는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봄이 오겠지? 지금은 어렵겠지만 따뜻한 봄날에 가까운 교외라도 같이 나갈 수 있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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