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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r 12. 2022

존재는 다름이다

존재는 다름이다. 무한히 넓은 우주 공간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시간의 연속선에서 모든 것은 고유한 자신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생명체이건, 무생물이건, 크기가 크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건, 이 세계에서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주의 먼지조차 그 성분과 크기와 질량이 다르다. 구분하지 못할 쌍둥이도 그 염기서열이 다르며, 극히 작은 세균도 같아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다. 


  태양계 내의 다른 행성들은 어떨까? 그들의 자전축은 지구와 비슷할까? 그렇지는 않다. 태양계 행성들의 자전축의 각도는 제각각 다르다. 수성은 0.04도, 금성은 177도, 지구는 알다시피 23.5도, 화성은 25도, 목성은 3도, 토성은 26.7도, 천왕성은 98도, 해왕성은 28도이다. 특이한 것은 금성의 자전축 기울기는 무려 177인데 이는 완전히 거꾸로 서서 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질문이 나올 법하다. 177도라면 수성과 마찬가지로 그냥 거의 기울어지지 않은 채로 공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자전축의 정의는 그 행성의 자전축과 공전축 사이의 각도를 말하므로 금성은 거꾸로 서서 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물구나무 선 채로 돌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천왕성은 98도이므로 이것은 옆으로 누워서 회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태양계의 행성이 각각 나름대로 자신의 자전축을 가지고 태양을 돌고 있다고 해서 어떤 행성도 다른 행성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연에 존재하는 그 무한한 존재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길을 갈 뿐 자신 외에 다른 존재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떨까?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나의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피부색과 외형이 다르다고 다른 존재의 다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다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우리는 왜 같아야만 한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그럴만한 권리라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나와 다르기에 나의 부족함을 그 사람으로부터 메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지식과 생각이 다르기에 그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와 같아야 한다면 신은 과연 다른 존재를 창조했을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한 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나의 생각으로 다른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나의 보다 나은 모습으로의 성장하는 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물구나무서서 걸어가건, 옆으로 누워 가건, 옆으로 약간 기울어져 가건, 똑바로 서서 가건, 그것이 바로 그 존재로서의 진정한 모습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는 비뚤어진 상태에서 45억 년을 지내왔다. 그것이 지구의 존재의 모습일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그리 힘든 것일까? 존재는 다름이다. 그것이 참된 그 존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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