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용의 소설 <두고 온 사람>은 인간의 정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말 여자 아이 단지와 남자아이 병국이는 모두 집안이 가난했다. 가난한 두 집 아버지 사이는 친구였고, 나중에 아이들 시집 장가보내기도 힘들 것 같아 그냥 둘을 나중에 나이가 들면 결혼시키기로 한다. 단지가 여덟 살 때 그녀의 아버지가 죽자 병국이 아버지는 단지를 집으로 데려와 키운다. 어린 시절 둘은 정혼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누이처럼 지낸다.
단지가 열일곱, 병국이가 열여섯 되는 해 병국이 아버지는 더 이상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아 두 아이를 동네 양조장 집에 밥이라도 얻어먹으라고 일꾼으로 맡긴다. 둘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각 방을 쓰면서 양조장집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게 되고 그 와중에 병국이의 아버지는 사망한다.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 오자 일본으로 유학 간 큰 아들은 징병을 피해 집으로 도망 온다. 광부로 취업하면 징용마저 피할 수 있어 양조장 아버지의 재력을 써서 광산에 취업을 한다. 육체적인 노동이 힘에 부친 양조장 아들은 병국이에게 대신 광산으로 나가라 하고 자신은 집에서 놀고먹는다. 그러다 해방이 되었고 금강산 근처가 그들의 동네였기에 소련군과 공산당이 동네에 들어와 모든 것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공산당이 동네에 진입하자 매일 밤 방공훈련을 위해 각 집에서 한 명씩 밤에 나와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양조장집에서는 단지가 밤마다 나가 방공훈련을 받는다.
"몸빼를 입고 양동이를 들고 방공 연습하러 나가는 단지를 볼 때면, 단지와 병국이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공산당의 세력이 더 커지자 부자였던 사람들이 무산계급과 결혼을 하면 공산당에게 잘 보일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양조장의 아들은 단지와 가짜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양조장 주인 부부에게 얘기한다. 두 부부도 단지와 병국이가 정혼만 했지 아직 같이 살지는 않았으니 가짜 결혼이라도 시켜 공산당의 핍박으로부터 벗어나자고 한다.
단지와 주인 아들은 가짜 혼례식을 치렀지만 양조장 아들은 단지와 첫날밤을 치른 후 아예 진짜 부부가 되어 버린다. 병국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병국이는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일하다가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하지만 병국이는 착한 아이였다. 말이 없어진 그뿐이었다."
공산당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청년 대원인 곰보와 친했던 병국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되고 얼마 후 곰보와 더불어 공산당 청년 위원이 되어 나타난다.
양조장집 주인의 비리를 조사하던 중 곰보의 명령에 따라 양조장집 주인에게 폭행을 가하려던 찰나 남쪽을 지지하던 동네 사람들에 의해 병국이는 맞아 죽게 된다. 이로 인해 양조장집은 공산당에서 추방명령을 받게 되고 양조장집 식구들은 남한에 가기 위해 삼팔선으로 향한다.
삼팔선 인근에 도착한 양조장집 식구들은 이미 삼팔선 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삼팔선을 넘게 해 줄 길잡이를 구한다. 길잡이가 자신들을 확실하게 삼팔선을 넘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양조장집 주인부부는 단지를 그 길잡이의 아내로 주기로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뒤에 따라오던 단지는 앞서 가던 양조장집 식구들과 헤어지게 되고 양조장집 식구들은 삼팔선을 넘게 되었고 단지는 홀로 북에 남겨지게 된다.
"엄마, 단지 언니가 없잖아?" 누나가 큰일 났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오다가 길을 잘못 든 게로구나." 어머니가 예사롭게 말했다.
"그럼, 단지 언니는 어떻게 하지?" 누나는 대뜸 눈물이 글썽해지며 다시 물었다.
"뒤따라오든가, 게서 잘 살든가 할 테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형은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북쪽을 바라보았다. 먼 하늘가에 치마폭으로 얼굴을 싸고 앉아 울고 있는 단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오누이처럼 살았지만 성인이 되면 부부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병국이가 단지를 주인집 아들에게 빼앗겼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가짜로 결혼식은 했지만 실제로 부부생활까지 한 뒤 가족과 남편이었던 양조장 집 큰 아들에게 버림받아 북에 홀로 남겨진 단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간의 정이라는 것이 필요에 따라 맺고 끊고 하는 것일까? 삶의 시간과 인간의 정을 그렇게 쉽게 잘라내고 이어 붙이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정을 사용하는 도구로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누구를 어디에 두고 온 사실은 없는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인간의 정마저 끊는다면 그들의 삶은 언제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경우라도 서로를 생각하며 같이할 수는 없는 것일까? 홀로 남겨진 이의 가슴은 얼마나 막막하고 앞으로의 그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