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Mar 17. 2022

절망의 자아를 딛고 서서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나? 사랑했던 사람도 다 떠나가고, 나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 데 남아 있는 것은 외로움과 절망뿐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 멀리 있어 다가올 엄두도 내지 않는다. 이 추운 겨울 남의 집 한기 가득한 조그만 방에 홀로 나의 생을 되짚어 본다. 


  나의 괴로움은 모두 나로 인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 누구를 탓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운명이 나를 이리로 몰고 온 것인지는 모르나 그 운명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의 운명을 내가 어찌할 수 없음에 삶은 고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점점 가라앉아 버리는 듯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 삶의 흔적이 지워져 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 자신을 딛고 일어서고자 한다. 그 모든 원인과 책임이 나에게 있기에 그것을 인정하고 나를 넘어서고자 한다.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해 새로운 목표를 잡고자 한다. 거창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나의 한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나마 나의 삶을 부끄럽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