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Apr 09. 2022

이젠 뭐 하고 살지?

  친구야,

  어젯밤에는 영화 ‘올드 보이’를 봤어. 가끔씩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곤 해. 처음에 봤을 때 하고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내가 놓쳤던 영화 속의 내용도 다시 이해할 수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사실 이 영화는 복수에 대한 거야. 주인공 오대수(최민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납치되어 15년간 갇혀 살게 되고, 그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분노로 자신을 납치한 사람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하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이우진(유지태)은 아무 생각 없이, 악의도 없이 한 오대수의 발언으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어 그에 대한 분노로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돼.


  하지만 오대수의 복수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이우진의 계획으로 인한 것이었어. 오대수를 15년간 감금했던 이유는 오대수의 딸이 아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한 것이었어. 그가 감금에서 풀려나온 후, 자신의 딸인 미도(강혜정)를 만나게 하고, 오대수는 자기 딸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녀를 강간하게 돼. 나중에 미도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대수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것이 바로 철저히 처음부터 계획된 이우진의 복수극이었던 거야.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만큼, 아니 그 이상의 상처를 주기 위해 이우진은 이러한 복수가 성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거야.


  결국 이우진이 계획했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그의 복수는 완벽하게 성공하게 돼. 영화의 막바지에 오대수는 자신의 복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우진에게 지옥 같은 자기 삶을 끝내게 해달라고 스스로 가위를 가지고 자신의 혀를 자르게 되지. 아무 생각 없이 실수로 한 자신의 발언을 제발 용서해 달라고, 앞으로 자신은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고, 아니 아예 말하지 않는 벙어리 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 혀를 없앨 테니, 이 지옥 같은 복수극을 제발 끝내 달라고 하지.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우진이 자신의 모든 복수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 후가 아닐까 싶어. 이우진은 자신의 목표가 완벽하게 실현이 되어 그가 의도했던 복수의 모든 것을 끝내고 난 후 이런 말을 해.

  “이젠 뭐 하고 살지?”


  이우진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이유와 목표는 단 한 가지, 오대수를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어. 그는 자신의 복수가 완성된 후 이 말을 하고 나서 자살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영화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어. 이우진은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의 복수를 위해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철저히 바쳤던 거야. 그는 자신의 삶 자체의 목표와 의미가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복수였어. 본인을 가장 분노하게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다 써버렸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와 의미를 찾지 못해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거야.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할 수밖에는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기도 하지. 그 누군가가 싫어진다면 그가 몰락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하지만 그러한 미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에 집착하는 노예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사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사로잡혀 철저히 그의 몰락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삶을 그렇게 끝내버리고 말았던 거야.


  만약 이우진이 오대수를 도저히 용서를 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를 잊고 살았다면 이우진의 삶은 어땠을까? 이우진은 자신의 복수를 성공했지만, 그는 오대수에 대한 집착으로 자기 삶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인생이 복수로만 끝난다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누구나 자신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아마 있을 거야. 그를 용서할 용기가 없다면, 그냥 그를 잊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그 무엇은 정말 나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평생을 그것을 목표로 하고 살았는데, 그 오랜 시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치열했고, 결국은 이루었지만, 다 이루고 났더니, 이우진처럼

  “이제 뭐 하고 살지?”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그 삶의 목표가 진정으로 성취할 만한 목표인 것일까? 혹시 다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허탈하고 허무한 것은 아닐까?


  영화 올드 보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나의 인생은 웃을만한 인생인 걸까? 아니면 울게 되는 인생일까?     


 


작가의 이전글 존재 자체만으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