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Apr 10. 2022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그때의 진실한 마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복잡해 잘 몰랐거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해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소현의 <그때 그 마음>은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나서 자기 삶을 바라보니 당시에는 몰랐던 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그러한 삶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정말 불이 났다. 집을 잿더미로 만든 불은 마당의 잡초를 태우고 옆으로 번져나가, 같은 골목의 인쇄소와 상가의 일부를 태웠다. 집 안에 쌓인 쓰레기들이 순식간에 타오른 데다 커다란 박스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 소방관의 진입이 어려웠다. 혜성이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불에 타서 새카만 가죽만 남은 집이었다. 화재의 원인은 안방 전기장판의 누전으로 보인다고 했다. 셋이 거실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혜성은 소리 내 울었다. 자기가 전기세를 내주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후회가 들었다. 설령 동생이 말한 것처럼 불을 냈다 할지라도 자기 탓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 같았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혼자 불행에서 빠져나오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죄스러웠다. 혜성은 가족을 잃고 나서야 어쩌면 그들을 사랑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혜성은 자신의 가족들이 너무나 싫었다. 아빠와 엄마의 선입견과 편견, 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질려 집을 나와 혼자 살았고, 차라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이 나서 모두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막상 가족이 전부 사망하고 나니 자신이 가족을 사랑했었고, 비록 매일 자신을 힘들게 했던 가족이었지만, 그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나중에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혜성은 헤어지고 난 뒤, 그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지만, 그에게 매달리지 않고 깨끗이 헤어져 주었다. 그것이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여러 번의 이별을 겪어서 그런지 혜성은 전보다 덜 아팠다. 혜성은 매번 자신 때문에 헤어졌으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진짜 사랑한 게 아니어서 떠난 거라고 생각했다. 혜성은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증명받은 것처럼 굴었다. 혜성은 더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그랬기에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외로움도 희미해져 살 만해졌는데, 그 외로움이 갑자기 돌아와 혜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가족을 그렇게 모두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로 인해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었다. 오직 외로움에 지쳐 사람을 만났고, 쉽게 사랑을 허락했고, 그리고 쉽게 헤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마저 그녀는 잃어버리고 만다.


  “혜성은 그런 날이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울고 웃고 흥에 겨워 춤추던 일들이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졌다. 혜성은 그때의 자신에게도, 그 이후의 자신에게도 그런 마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긴 세월 아무리 도려내 버리려 노력했음에도 자신의 고통이 그 자리에 살아 있듯 사랑 또한 그 자리에 살아 있음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있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음을 혜성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나서, 세월이 많이 흘러간 뒤에 생각해보니, 자신의 마음에는 사랑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그때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중한 사람을 잃기 전에 더 많은 사랑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을 뿐이다. 


  소중한 것을 잃기 전에, 그때 그 마음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 그 진실된 마음을 알게 된다. 삶은 그래서 어쩌면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알 것 같은데, 모든 것이 지나버리고 말아서 어찌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젠 뭐 하고 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