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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11. 2022

영혼의 감옥

 나의 영혼은 너무나 메말라 사막의 모래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삶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찾아낼 가능성이 희박하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막 같은 나의 영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영혼에 자유를 주고 싶었다.


  나는 왜 나의 영혼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로 인한 것일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때문인 걸까? 아니면 나 스스로 그러한 상황을 자초했던 것일까? 이유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나의 영혼에 이제는 자유를 찾게 해주어야 할 때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갑자기 기억났다.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의 팬 틀에 넣어 만든 ‘쁘띠뜨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에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홍차와 마들렌이 필요했다. 삶의 강렬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것이 나에게 있어야 했다. 그 무엇이 나에게는 홍차와 마들렌이 되는 것일까?


  프루스트는 어머니로부터 홍차와 마들렌을 받았건만, 나는 그 누가 나에게 그러한 것들을 줄 수 있는 것일까? 그것들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는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일까? 삶의 어느 한 우연이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아마 생존의 본능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나 스스로 희망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주어지지 않는다면 찾아 나서야 함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면의 한구석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더 의미 있고, 기쁜 그러한 순간을,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희망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의 영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삶을 살아온 그 수많은 시간이 ‘의미 없음’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한밤중에 답답한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싶었다. 봄바람에 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실려 왔다. 그 향기가 나의 가슴 깊은 곳까지 밀려드는 듯했다. 어릴 적 바로 우리 앞집에서 느껴졌던 라일락 향기였다. 저 라일락 향이 나에게는 홍차와 마들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프루스트는 시간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영혼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감옥에 갇혀 있던 나의 영혼이 이제는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영혼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영혼의 진정한 자유는 언제나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언젠가는 그러한 날들이 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언젠가는 그러한 날이 나에게 곧 오리라 믿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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