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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12. 2022

완벽한 사랑의 어려움


완벽한 사랑은 정말 힘든 것일까?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없지만, 사랑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 또한 없지 않다. 마음만으로,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결코 우리에게 쉬운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은 시간의 함수이며, 사람이라는 존재가 대상이고 주체이기에 생각한 것만큼, 마음먹은 만큼,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사랑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아름답고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감정이나 마음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바로 그 순간이 내 생애를 결정지었다. 지금도 괴로움 없이 그 순간을 회상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알리사가 슬퍼하는 이유를 아주 어렴풋하게만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닥거리는 그 작은 영혼과 흐느낌으로 온통 뒤흔들린 연약한 육신에게 그 슬픔이 너무도 벅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여전히 꿇어앉아 있는 그녀 곁에 서 있었다.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새로운 격정을 나는 무엇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그녀 머리를 내 가슴에 꼭 끌어안고, 내 영혼이 흘러넘치는 입술을 그녀 이마에 맞출 뿐이었다. 사랑과 연민에 도취되고, 감격과 자기희생과 미덕이 혼합된 막연한 감정에 도취되어, 나는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 호소했고 그분께 나 자신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인생의 목적은 오직 이 소녀를 공포로부터, 악으로부터, 인생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무릎을 꿇는다.”


주인공 제롬은 알리사를 어릴 때부터 사촌으로서 알고 지냈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임을 깨닫는다. 알리사 또한 제롬을 그녀의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단순히 마음이나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알게 된다.


“그날 아침, 작은 교회당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마도 의도적이었겠지만, 보티에 목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을 위한 성경 구절로 택했다. 알리사는 나보다 몇 줄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게는 그녀의 옆모습만 보였다. 나 자신을 망각할 정도로 그녀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고 있던 설교 말씀도 그녀를 통해 들려오는 듯했다. 외삼촌은 어머니 곁에서 울고 있었다.”


사랑의 과정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것일까? 단순히 그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만으로 사랑이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마저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결코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사람이라는 존재 또한 알 수가 없기에 마음과 감정만으로 사랑이 이어지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정말 나는 그녀 곁에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행복은 너무도 완전해서, 이제 다시는 그녀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품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벌써부터 나는 그녀의 미소 말고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꽃들이 피어 있는 따스한 길을 둘이서 손잡고 걷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면 얼마나 삶이 행복하고 기쁨에 넘칠까? 다른 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그저 내가 사랑하는 그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그런 순간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알리사가 자신을 희생하려 한 거야. 자기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 거지. 어때, 이 친구야! 어쨌든 그리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도 아니지. 그렇지만 나는 쥘리에트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했어.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아니 내 말뜻을 알아듣자마자, 그녀는 우리가 앉아 있던 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틀림없이 그럴 줄 알았지’하고 말하는 거야.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 같은 말투로 말이야,”


제롬은 알리사와의 사랑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알리사 또한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녀 또한 제롬과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알리사의 동생인 쥘리에트가 제롬을 사랑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된 알리사는 동생을 위해 스스로 제롬과의 사랑을 포기한다.


“나의 사랑만이 내 삶의 유일한 이유였다. 나는 그 사랑에 매달렸고, 내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으며, 또한 기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튿날 내가 알리사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모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방금 받았다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내밀었다.

쥘리에트의 심한 흥분 상태는 의사가 처방해 준 물약으로 아침이 되어서야 진정되었어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제롬에게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쥘리에트가 제롬의 발소리나 말소리를 알아들을 테니까요. 그 애한테는 절대안정이 필요해요.”


알리사의 동생인 쥘리에트로 인해,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한다. 쥘리에트는 제롬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제롬이 그녀의 친언니인 알리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어긋나기 시작한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아! 슬프게도, 이제 나는 너무나 잘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과 제롬 사이에는 오직 나라는 장애물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가 말한 것처럼, 아마도 처음엔 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그 사랑이 그를 방해하고 있다. 그는 나로 인해 머뭇거리고, 다른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그가 덕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우상이 된 것이다. 우리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거기에 도달해야 한다.”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하지만,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동생과의 일에서부터 비롯된 이러한 사랑에 대한 고민은 결국 그들의 사랑이 빛을 발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제롬과 알리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를 떠나 각자의 길을 가며 따로 지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적 이별은 사랑의 길에서 더 이상 진전을 이루지 못하게 할 뿐이었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보고 싶어 하면서도 인내해야 하는 상황은 결국 사랑의 완성을 멀게만 할 뿐이었다.


“제롬, 너에게 완전한 기쁨을 가르쳐 주고 싶구나. 오늘 아침, 구토증 발작으로 기진맥진해졌다. 그러고 난 다음 너무도 쇠약해진 느낌이어서, 한순간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평온이 온몸에 깃들었다. 그러고는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고, 육체와 영혼이 전율했다. 그것은 마치 내 삶의 실상을 환상 없이 보여주는 갑작스러운 ‘계시’와도 같았다. 나는 끔찍할 정도로 헐벗은 내 방의 벽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라앉히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오, 주여! 당신을 모독하지 않고 마지막에 이르도록 해 주시옵소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무릎을 꿇었다. 또다시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지금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제롬은 어느 날 갑자기 알리사의 죽음을 통보받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 아직 너무나 젊은 나이였기에 알리사가 그렇게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서로의 존재가 삶의 이유였는데, 행복이라는 순간은 그 존재와 함께여야만 가능했는데, 어떤 이유로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하루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사랑은 그리도 힘들고 어려운 것일까?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로 좁은 문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일까?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과 마음만으로 사랑의 완성은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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