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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14. 2022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한때는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희망을 간직한 채 꿈을 꾸곤 한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현실은 그 꿈을 이루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손홍규의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우리들의 아름다웠던 꿈이 점점 사라져가면서 차라리 현실이 밤에 잠자다 꾸는 꿈처럼 되기를 바랄 정도로 우리의 인생의 굴곡의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순수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살아야 했고 어떤 감정이 엄습하면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전혀 다른 감정을 쥐어짜낸 뒤 엄습하는 감정을 방어했다. 그런 과정에서 감정들은 뒤엉켜 하나가 되어 동시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었고 이렇게 합금처럼 태어난 감정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그것을 가리키는 가장 적절한 말은 괴물일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그는 서서히 괴물이 되어갔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 순간이 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을 지나니 어느 순간 꿈을 포기하기 위해 애쓰게 되어버렸다.”


  희망의 사다리는 정녕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일까? 거창하지는 않지만 조그마한 행복과 삶의 기쁨을 꿈꾸는 것도 사치였던 것일까? 현실은 왜 그리도 평안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꿈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일까?


  “그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일이 그를 흔들었다. 그에게 발을 걸고 그의 팔을 잡아당기고 그의 발목을 옭아매려 했다. 그는 넘어지지 않고 끌려가지 않고 붙들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왔다. 타인의 눈에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부동을 고수했을 뿐이다.”


  왜 그리도 많은 일이 우리에게는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원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 일들은 수시로 나에게 불현듯 다가오고,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무너지는데도 또 다른 일들은 기다리지도 않고 나를 덮치기도 한다. 나 자신을 지켜내기도 버겁고, 그러한 일들을 극복해 내기에도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삶의 파도를 언제까지 어떻게 감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외롭다는 걸 잊어버렸고 그걸 잊어버렸기에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절망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밤마다 감옥을 나서는 꿈을 꾸었다가 아침에 깨어나 감옥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쓸쓸해 하는 종신형 죄수처럼.”


  현실이 차라리 밤에 자다가 꾸는 꿈이기를 바란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시공간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그리고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꿈이기를 소망하고 싶다. 다만 꿈이었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그러한 현실이었으면 좋을 우리의 현재가 가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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