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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3. 2022

찰스 램은 왜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까?

 엘리아 수필집으로 유명한 찰스 램은 영국 수필 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문인이다. 그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결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그는 무슨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던 것일까?


  1775년 런던에서 태어난 찰스 램의 가정은 그리 부유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7명의 형제, 자매가 있었는데 형인 존과 누나인 메리 그리고 찰스 3명만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나머지 4명의 형제는 일찍 사망했다. 누나인 메리는 찰스보다 11살 많은 1764년 생이었다.


  찰스 램은 초등학교 시절 수재로 인정받았고 글쓰기에도 많은 재주가 있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일찍이 학교를 그만두고 어릴 때부터 상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집안을 위해 돈을 벌었다. 그의 나이 17세에 동인도 회사의 한 계열회사에 취직했고 그곳에서 33년간 일을 했다.


  1796년 그의 나이 21살 때 찰스 램의 집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병들어 누워 지내야 하는 어머니, 그의 누이 메리, 그리고 고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찰스는 자신이 일해 번 돈으로 이 모든 사람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형인 존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었다. 당시 찰스의 누이인 메리에게는 정신적 질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나, 이를 치료할 가정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해 9월 찰스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이였던 메리가 정신 착란을 일으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가족들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피가 낭자했다. 그의 고모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아버지는 머리에 상처를 입어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은 채 누이에게 칼에 찔려 있었다. 메리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집안을 헤매고 있었다. 찰스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누이인 메리에게서 칼을 빼앗고, 어머니를 응급 처치했으나 결국 그의 어머니는 누이 메리에게 찔린 상처로 인해 사망해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치매에 걸린 아버지 그리고 정신병을 앓는 누이인 메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형인 존과 상의를 했다. 존은 메리를 국가가 운영하는 요양원에 보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찰스는 누이가 너무 불쌍해 형의 의견에 반대하고 자신이 평생 아버지와 누이를 돌보겠다고 말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누이가 또다시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에 형인 존은 찰스를 설득했지만, 찰스의 결심은 확고했다. 존은 찰스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위험해 처할 수 있다고 찰스의 마음을 바꾸려 했지만, 찰스는 자신은 누이를 돌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누이가 죽을 때까지 홀로 독신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찰스의 그 결심은 그가 죽는 날까지 지켜졌다. 그는 그렇게 누이를 위해 평생 독신으로 살며 누이를 보살폈다. 찰스는 어린 시절의 누이를 잘 알고 있었다. 메리가 정신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정말 착하고 똑똑한 그의 누이였다. 그러한 누이가 병을 이기고 원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했기에 찰스는 누이를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메리는 주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주 현명하고 이성적인 여인이었다고 한다. 정신병이 발병되기 전에는 감수성도 예민하고 사리에도 밝았으며 찰스와 문학에 대해 자주 논하기도 했다고 한다.


  찰스의 누이에 대한 사랑은 정말 지극하여 이후 직장에서 일을 하며 누이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누이인 메리의 정신병은 치료되지 않았다. 누이의 건강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찰스 램은 1834년 5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누이인 메리는 찰스 없이 홀로 요양원에서 13년 더 살다가 1847년에 세상을 떠났다.


  찰스 램의 수필이 인간적인 이유는 아마도 누이에 대한 애정과 가정의 비극, 인간에 대한 연민, 그러한 것들이 모여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인간의 가장 아픈 내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아픔을 가진 누이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것들을 포기한 채 누이를 위해 평생 독신으로 살만큼 헌신적이었다. 자신의 삶보다 그 누구를 위한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은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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