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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3. 2022

인간관계의 허무함

상호작용 중에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작용 반작용 법칙이 아닐까 싶다. 서로에게 향하는 짝힘이며, 그 크기가 같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또한 이러할 경우 오래 갈 수 있다. 만약 그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 크기마저 같지 않다면 균형이 깨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다른 쪽에게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주고, 한쪽은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균형은 흔들린다. 한쪽은 나름대로 다른 쪽을 위해 무언가를 했는데, 다른 쪽은 네가 해준 게 뭐가 있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이 또한 문제이다. 객관적인 인식의 부족함이 균형을 깨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한 것, 상대방이 나에게 한 것, 즉 서로에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함 또한 미숙함의 인간관계다. 균형은 여지없이 깨진다. 무지가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옳지 않다는 자만심, 상대방은 나보다 못하고, 나는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함, 또한 작용 반작용 법칙에서 어긋난다. 서로를 생각해 주지 못하는 이러한 무배려가 균형을 깨뜨린다. 


  성석제의 <내 고운 벗님>은 우리들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허무하게 끝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 소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예비역 대위와 예비역 중사는 군대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였다. 비록 간부와 하사관이었지만, 나이도 동갑이었고 성격도 비슷해 계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한 사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낚시를 하면서 그동안의 회포도 풀고 휴식을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사소한 것으로 인해 그 오랜 세월 유지했던 친구라는 관계가 하루아침에 끝나 버린다. 


  “오전 열 시, 제방 쪽에서 보트가 출발했다. 장 병장이 붕어를 구해 왔다면 바로 그 보트에 타고 있을 것이었다. 저수지 중간쯤에서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산소통을 메고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보트에 매달린 살림망 속에 거대한 떡붕어가 들어 있다. 장 병장은 그 살림망을 끌고 대위가 앉아 있는 포인트까지 물속으로 헤엄쳐온다. 두 칸 반짜리 낚싯대의 1.5호 원줄에서 갈라진 0.8호 목줄에서 5호 바늘을 발견한다. 바늘에는 지렁이가 길게 늘어져 있다. 수면에서는 정 낚시가 정성스럽게 만든 오십오 센티미터짜리 수제찌가 살며시 흔들리고 있다. 장 병장은 살림망 속의 붕어를 확인한다. 붕어는 크지만 순하다. 유료 낚시터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매일 풍성하게 주어지는 먹이를 먹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장 낚시는 붕어가 꼬리로 낚싯바늘을 치듯 자신의 손으로 바늘을 탁탁, 쳐서 신호를 보낼 것이다. 대위는 반응한다. 왔군. 이 저수지의 대왕이 드디어 왔군.”


  중사는 대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낚시를 하기 위해 중사의 고향으로 방문한 대위에게 몰래 월척을 낚게 해주기 위해 친구들을 동원하여 저수지에서 잠수해서 대위의 낚싯바늘에 아예 커다란 붕어를 잡히게 해주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대위와 자신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객관적인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대위의 비위만 맞추어 주려고 하는 불균형한 인간관계의 전형이었다. 


  상호 작용에 있어서는 서로의 존재가 같이 중요해야만 한다. 자신이 존재해야 상대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사는 상대를 위해 자신을 대위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식으로 자신을 낮추어 버렸다. 이러한 것이 상대를 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아님을 그는 몰랐다. 자신이 상대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알아주지도 못하고 상대는 나의 그 많은 희생에 응답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낚시만 그런 줄 알아? 아냐. 골프도 그래. 드라이버, 잔디의 성질, 날씨, 바람의 방향, 골프 치는 사람, 캐디, 골프장 소유자, 게임에 걸린 돈, 이거 전부 조건 아닌가. 골프만 그러냐. 아냐. 전쟁도 마찬가지야. 병력, 장비, 수송, 화력, 작전, 참모, 지휘부 이거 전부 조건이야. 인생은 조건. 인생은 조건이란 말이다. 알아들어? 야, 임마 너 도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이 섀키가,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눈깔을 어디로 돌리고, 야 이 씨부랄 놈아. 이 캐애섀키가 뒈질라고 환장을 했구만.”


  대위 또한 무지했다. 중사가 그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낚시에 걸린 붕어를 얼른 잡아채야 하는데, 대위가 낚시찌를 못 보고 있어, 걱정스런 마음에 낚싯대를 보고 있는 중사를 대위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욕을 하기 시작한다. 


  대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무식함이 있었다. 상대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오만함도 있었다.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낚시는 끝났다. 대위는 택시를 대절해서 가버렸다. 왔을 때처럼 손가방 하나만 들고 가버렸다. 쓰레기며 쓰레기봉투며 낚싯대며 텐트며 침낭이며 파라솔이며 릴, 낚싯줄, 찌, 수중찌, 캐미라이트, 모자, 낚싯바늘, 도래 구슬, 봉돌, 받침대, 뜰채, 장갑, 편광안경, ......., 칼, 랜턴을 남기고 가버렸다. 떡밥이며 새우며 지렁이며 구더기며 글루텐이며 혼전만전 내버려놓고 가버렸다.”


  군대에서 한솥밥을 먹고, 많은 고생도 같이 했고, 오랜 시간 함께 한 시간은 그들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순하고 사소한 낚시터에서의 일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영원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한번 어긋나 버린 상호작용은 다시 돌이키기에는 극히 어렵다는 사실도 그들은 몰랐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 모든 세월을 한순간에 끝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허무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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