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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4. 202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평생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 돈, 명예, 권력, 자신의 꿈, 이상, 종교적 초월, 인간적 윤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추구하지만 그중에서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윤대녕의 <천지간>은 버림받은 한 여인과 우연히 그 여인과 동행하게 된 남자 사이에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에 대한 소설이다. 


  “깨어 보니 나는 들꽃이 무리 지어 있는 강둑에 누워 있었다. 처음엔 그곳이 어느 세상인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나는 그때까지도 조개를 쥐고 있는 손에서 매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내 옆에는 거적때기를 쓴 친구 하나가 더 누워 있었다.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다가 대신 변을 당한 것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죽은 친구를 보기 위해 거적때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아까 물속에서 보았던 예의 푸른빛과 보랏빛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한데 그 흰빛의 광경은 그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 남자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 급류에 휩쓸려 갔다. 이를 본 친구들 중 한 명이 그를 구해주려 물로 뛰어들어 그를 구했지만, 대신 그 친구가 사망하게 된다. 그는 자신 대신 세상을 떠난 그 친구에게 생명에 대한 빚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그는 집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던 중 같은 버스 안에 있던 한 여인을 발견한다. 그 여인의 얼굴에서 죽음 같은 그림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장례에 가는 길을 돌려 그 여인을 따라가게 된다. 


  인적 드문 바닷가의 여관에 들어가는 여인을 따라 자신도 같은 여관에 묵었고 이틀만 그 여관에 머물기로 한다. 


  “그날 새벽 그 여자가 내 방으로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 같은 일은 서로 묻고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성싶다. 여자도 그런 자신을 명백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자의 만남은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고 헤어질 때도 역시 그랬다. 세상엔 참으로 여러 가지의 만남이 있는 모양이고 그걸 행여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여자와의 만남은 분명 기이한 인연에 속하는 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 나는 여자가 들어오게 옆으로 조금 비켜섰고 그런 다음 뒤에서 문을 닫아걸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젖은 옷을 한 겹씩 한 겹씩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는 알몸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반듯하게 누웠다. 커튼을 치고 불을 끄자 남은 어둠이 그물처럼 드리워졌다. 그러나 정녕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날 새벽 남은 어둠 속에서 보름달이 떠 있었다는 것을. 여자와의 관계가 끝나고 난 다음에야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내 손바닥 안에 달이 떠 있다는 것을”


  바닷가를 서성이는 여인의 주위를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끄는 듯했다. 이틀이 지나고 마지막 날 밤 그 여인은 새벽에 남자가 머물고 있는 방을 찾아온다.


  그녀는 처음 만난, 알지도 못하는 그 남자에게 왜 새벽에 찾아왔던 것일까? 


  “여자는 임신 4개월째였다. 3개월 전 한 남자와 이곳 구계등에 왔다가 첫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보리 싹이 팰 때 결혼하자던 남자가 1개월 전에 여자의 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여자는 광주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던 나를 본 순간에야 자신이 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한 것도 그때였다고. 내가 구계등까지 따라오게 내버려 둔 것도 실은 아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누군가 아이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자신이 부러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구계등까지 걸어온 건 읍내 터미널에 내려서도 확실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탓이었다. 다른 한편으론 내게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처 따라오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작정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전생을 지우기 위해 나와의 관계를 원했고 그리하여 아이는 살리되 아이의 아비에게서는 놓여 날 수 있었다고 중얼거리며 내 팔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여인은 이미 여관을 떠나고 없었다.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픔과 상처는 털어내면 그만이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시간이 지나면 낫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엄청난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사실 별것 아닌 것이다. 


  알 수 없는 인연이었지만, 그는 친구에게 가지고 있었던 생명에 대한 빚을 그렇게 갚은 것인지도 모른다. 


  천지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생명이 사라진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잠깐뿐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것도 지나가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소중한 것들도 언젠가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에 의미를 두는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천지간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의 생명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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