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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6. 2022

모든 일은 그렇게 일어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알 수가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했던 것들, 원하거나 바라지 않았던 일들, 진정으로 소원했던 일들, 그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곤 한다. 


  미야모토 테루의 <반딧불 강>은 사춘기 소년인 다쓰오 주위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비록 10대의 소년이었지만, 그에게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반딧불이 내리는 거야. 본 적이 없지? 반딧불이 무리 말이야. 무리가 아니라 덩어리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이타치 강 아주 상류에, 넓은 논만 잔뜩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저편에,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서 반딧불이가 태어나는 거란다. 이타치 강도 그 언저리는 물이 맑거든. 아무튼 굉장히 많은 반딧불이야. 큰 눈처럼 이쪽저쪽에서 반딧불이 쏟아지지.”


  수십 마리나 수백 마리의 반딧불은 볼 수 있겠지만, 수십 만이나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이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 


  “두 달 후, 치요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의 자신의 심정을 잘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단지 아내를 버리고 집과 재산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남편이 되려 했던 쉰두 살의 사내에 대해서 치요는 일종의 공포심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아이를 포기하면서까지 남편과 헤어진 여자가, 아내를 버리고라도 아이의 아버지가 되겠다는 사내한테 시집온 것이었다. 치요는 음식점에서 일하던 무렵의 기묘한 허탈감과 외로움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은 시게타쓰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생각하기 힘든 일들도 일어나곤 한다. 다쓰오의 아버지, 시게타쓰에게는 첫 번째 아내가 있었다. 20여 년 넘도록 행복하게 살았지만, 50이 넘어서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아들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20여 년 동안의 그 세월을 부정하듯 그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인을 만난다. 그 여인이 바로 다쓰오를 낳은 치요였다. 


  치요 또한 전 남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술에 취하면 주정을 하는 것을 참지 못해 본인이 낳은 아이가 2살임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남편을 아이와 함께 버렸다. 


  그런 치요에게 시게타쓰는 자신의 아이를 낳기 위해 함께 살자고 한다. 시케타쓰에게 치요는 딸이라고 할 수 있는 20년이 훨씬 넘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시게타쓰의 첫 번째 아내는 이 일로 자연히 20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과 본의 아니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쓰오는 그 이튿날 세네키 게이타가 진쓰강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이웃에 사는 급우에게 전해 들었다. 그 소년은 아침 일찍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고 같은 반 학생들의 집을 하나하나 돌면서 전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급우는, 장례식은 내일 낮부터야, 라고 말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10대가 된 다쓰오, 매일 함께 놀고 같이 지냈던 가장 친한 친구는 세네키 게이타였다. 어느 날 평생토록 변함없는 우정을 지키자고 결심한 세네키는 며칠 후 익사된 채 시체로 발견된다. 아직은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다쓰오에게 가장 진실했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다쓰오는 이대로 병원에 가지 않고 번화가를 언제까지고 걷고 싶었다. 알지도 못하는 가족들의 뒤를 몰래 미행하거나, 책방 주인의 눈을 의식하면서도 끈질기게 서서 책을 읽거나, 한산한 영화관 안에서 상영 중인 영화에 몰두하면서 오징어를 씹거나 하는 것이, 어쩐지 몹시 행복한 일인 듯이 여겨졌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전차에 올라타자 그 진동의 일정한 선율에 맞춰서 다쓰오는 어느 틈엔가 ‘아버지가 죽는대, 아버지가 죽는대’하고 가슴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쓰오에게 아버지는 강하고 하늘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 존재의 근원이었던 아버지도 친구였던 세네키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만다. 


  “냇물 소리가 왼쪽에서 차츰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서 길도 왼쪽으로 구부러져 갔다. 그 길을 완전히 돌아 달빛이 부서지는 수면을 내려다본 순간, 네 사람은 말을 잊은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오백 걸음도 걷지 않았다. 수십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강가에서 조용히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네 사람이 각자 가슴속에 그리고 있던 동화 속의 화려한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반딧불을 찾아 길을 나선 다쓰오와 엄마 그리고 같은 반 여자 아이인 히데코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을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평생에 보기 힘든 그런 모습이 실제로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치요도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었군요. 하며 풀 위에 주저앉았다. 밤이슬에 젖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하고 치요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 애절하고 슬플 만큼 창백하게 반짝이는 빛의 덩어리에 넋을 잃고 있노라니, 이제까지의 일이 모두 거짓이 아니었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거짓이 아니었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얹고 몸을 구부렸다. 전신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치요는 생각한다.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들이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났듯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믿어지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모든 일은 그렇게 거짓말 같지만, 거짓이 아닌 채로 일어났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우연과 필연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빛의 입자가 일제히 몰려와 가슴이며 스커트 속으로 밀려드는 것이었다. 하얀 피부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했다. 다쓰오는 숨을 죽인 채 히데코를 보고 있었다. 반딧불이 무리는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파도쳤다. 그것이 반딧불이 소리인지 냇물 소리인지 다쓰오에게는 이미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만 수십만 마리의 반딧불이들은 사실은 히데코의 몸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듯이 여겨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정말 생각하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도,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소원하는 일들도 그렇게 다 일어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그 무한한 가능성에서 우리는 얼마나 그것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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