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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7. 2022

신 그리고 선과 악

인류 역사 이래로 악은 항상 존재해 왔다. 절대적인 악, 예를 들어 살인과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많은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고, 현재 또한 진행 중이다. 그러한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전쟁이 아닌 경우에도 살인은 계속되어 왔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러한 일들이 인류 역사를 통해 계속되어 오는 것일까? 신은 그러한 일을 오직 인간의 자율에만 맡겨놓은 것일까? 


  엔도 슈사쿠의 <신의 아이>는 유일신을 믿는 서양 문화에서 선과 악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러자 이본느는 고기 조각 대신에 끈 하나를 손에 들더니, 한쪽 무릎으로 버둥거리는 개의 목을 조른 채 순간적으로 늙은 개의 입을 묶었다. 상반신을 창에 걸친 채 나는 떨고 있었다. 이본느는 놀리듯이 묶인 개의 주둥이 앞에 고기 조각을 가져간다. 개는 양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뒷걸음치려고 한다. 이본느는 오른손을 들어 심하게 개를 때리기 시작했다. 개의 목은 그녀의 하얗고 굵은 허벅지에 눌려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다리만을 공허하게 허둥거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본느는 한쪽 무릎을 들어 주둥이에 묶인 끈을 풀어주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우리 집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때 내가 맛보았던 것은 정욕의 희열이다. 그 폐병을 앓는 늙은 개의 목을 꼼짝 못 하게 누른 이본느의 포동포동한 무릎은 낙인찍히듯 내 기억 속에 하얗게, 너무나도 하얗게 남겨졌다. 나의 육욕은 학대의 쾌락을 동반하며 눈을 뜬 것이다.”


  주인공 집의 하녀인 이본느는 평소 착한 여자였다. 주인에게 겸손하며 순종하는 일 잘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착하기만 했던 이본느가 힘없고 늙은 개에게는 악마와도 같이 자신의 힘으로 개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악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다른 존재를 억압하면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다는 것을 주인공은 이본느로부터 깨닫는다. 


  “바람이 주방의 유리창을 띄엄띄엄 울리고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잿빛을 띠고 지나가는 바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로서는 이미 몇천 년 동안, 또한 몇천 년 후에도 바람은 이처럼 불어대고, 창유리를 가끔 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주방이 언젠가 흔적도 없이 타 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쟈크를 고문하는 모습은 바람처럼 남는다. 중위, 알렉산델, 캬반느는 죽어도, 다음의 녀석들이 다시 태어난다. 쟈크는 이 불변의 인간의 모습이 언젠가는 없어질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인간을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인간을 경멸하고 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고, 독일군은 프랑스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왜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무슨 이유로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잘못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무참히 죽이는 걸까? 


  독일인이 유태인을 무참하게 잡아 사형시키는 모습을 본 주인공은 히틀러 집단이 또 하나의 이본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믿는 신은 어디에 있기에 인간의 사회가 악의 구덩이로 빠지게 되는 데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나는 학생 시절부터 네가 영웅이 되려고, 희생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때문에 나는 너의 영웅심과 희생심을 제거하겠다고 줄곧 생각해 왔지. 나는 드디어 그것을 깨달았던 거야. 너만이 아냐. 나는 그와 같은 도취와 신앙을 지닌 자가 미워. 그들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지.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하기 때문이지. 쟈크, 나치즘은 정치야. 정치는 인간의 영웅심과 희생을 박탈할 방법을 잘 알고 있지. 희생도 자존심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해. 하지만 이 감정은 간단히 제거할 수 있어. 너, 폴란드의 나치 수용소의 이야기를 들었겠지? 처음에는 그런 도취에 빠진 투사가 많이 있었던 것 같더군. 그들은 너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처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어. 거기에는 영웅의 고독, 영웅의 죽음이라는 낯간지러운 희열이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말이야. 히틀러는 그것을 잘 간파하고 있었어. 그들을 무명인 채로 집단으로 처형했지. 히틀러는 그런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죽음을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거야.”


  주인공은 대학교 때 자크라는 신학생을 알고 있었다. 자크는 항상 종교적인 생활을 하며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자신처럼 살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자크가 믿는 신은 전쟁이 한창인 이때 어디에 있는 것일까? 수천만 명이 죽어 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너는 자살함으로써 나한테서 도망칠 생각이었겠지. 동지를 배신해야 하는 운명과 마리 테레즈의 생사를 좌우할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생각이었겠지. 나치도, 나도, 더 이상 너 때문에 마리 테레즈를 이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무의미하다. 너는 나를 지울 수 없어. 나는 지금도 이곳에 존재하고 있어. 내가 만일 악 그 자체라고 한다면 너의 자살에 상관없이 악은 계속 존재한다. 나를 파괴하지 않는 한, 너의 죽음은 의미가 없어.”


  자크는 히틀러 집단에게 저항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도 독일군에게 잡히게 된다. 심한 고문을 받으며 동료를 배신하고 신이 자신에게 원하는 길을 배신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주인공은 자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자크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는 신의 길을 걷지도 신을 배신하지도 않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인간으로서 신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신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선과 악의 공존이 항상 있었듯이, 앞으로도 그 공존이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신의 뜻일까? 아니면 그 선과 악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류가 되기를 신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희생된 사람들의 생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모습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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