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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27. 2022

아사달과 아사녀

부여에 살던 아사달은 서라벌로 떠나야 했다. 신라에 세워지는 불국사에 두 개의 탑을 세우기 위해 내일 아침 먼 길을 가야 했다. 혼인한 지 2년 남짓, 어린 아내를 병든 장인과 함께 남겨두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길을 나서야 했다.


“아내는 베개를 고쳐 베고 이불의 접힌 자락을 펴서 따둑따둑 덮어주고 나서 물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남편의 쳐다보는 눈길과 딱 마주치자 그 젖은 눈동자는 달아날 곳을 몰라 잠깐 허전거리는 듯하더니 어색하게 상긋 웃고 저도 따라 눕는다. 아사녀는 눕는 길로 곧 눈을 감는다. 이윽고 아사달은 고개를 쳐들어 아내의 얼굴을 자세자세 보고 또 보았다. 제 머릿속 깊이 새기어 넣으려는 것처럼.(무영탑, 현진건)”


사랑이란 애틋함이 아닐까?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함에서 그러한 애틋함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내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내가 옳다고 판단하는 것이 있어도, 그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는 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아내는 무슨 긴히 부탁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붓이 다시 앉는다.

‘그런 걱정을랑 조금도 마셔요. 내가 어쩌든지 모시고 꾸려 갈 테에요. 몇 해가 걸리든지 부디 대공만 이루셔요.’

하고 얼굴빛을 바루며 단단한 결심을 보이었다.

‘부디 대공만 이루셔요’

나직하나 힘 있던 그 말소리! 지금도 아사달의 귀를 울리고 마음을 울린다. 안타까운 이별도 애달픈 그리움도, 남편의 재주를 빛내고 이름을 이루기 위하여 즐기어 견디려는 그 씩씩한 태도! 언제 생각해 보아도 든든하고 고마웁고 눈물겨웁다. 아직 철부지로 알았던 아내가 어느 틈에 그렇게 장성해졌을 줄이야. 물보다 더 무른 줄 알았던 그 마음이 그렇게 여무질 줄이야. 생각할수록 새록새록이 아내가 그리웁다.”


아사달을 왜 그리도 아사녀가 그리웠을까? 아사녀는 자신보다 아사달을 먼저 생각했다. 아사녀는 아사달이 아사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 아사달이 많은 것을 희생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오직 그가 가야 할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지 않기만을 원했다. 아사달이 아사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그저 자신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사달은 고아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남달랐다. 현재의 모습은 보잘것 없었으나 아사녀는 아사달의 미래를 그냥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 모든 것이 믿어졌다.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사녀는 그를 마음속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단점을 지워버렸다. 다만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꿈에서나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하기에 가능했다.


아사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저 마음으로 아사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마음으로 그녀를 택했다. 그는 단지 그녀와 함께 함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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