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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3. 2022

이미테이션 게임

  친구에게,

  얼마 전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를 보았어. 이 영화는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이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내는 과정에서 지금 컴퓨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암호해독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야.


  내가 생각할 때 과학자는 인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비록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 과정을 극복해 내다보면 언젠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고, 그 결과로 인해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 


  세계 2차 대전에 동원된 그 엄청난 인원들, 그들 대부분은 20세 전후인 젊은 청년들이었어. 아직 세상을 많이 느껴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그런 젊은이들이 그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전쟁에 동원되고,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서 아무런 죄도 없이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죽어간 수가 수천만 명이었어. 그들의 소중한 목숨이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진정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유를 막론하고 전쟁은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어. 이를 위해서는 전쟁 당사자 중의 한쪽은 어쨌든 패배해야만 전쟁이 끝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아닐까 싶어. 


  과학자였던 튜링은 어떤 역사적 흐름이나 정치적 현실 감각은 없을지 모르나, 전쟁을 좀 더 일찍 종식시킬 수 있는 능력은 있었어.


  당시 해독이 절대 불가능한 독일군의 암호인 ‘에니그마’로 인해 연합군은 독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어. 그로 인해 연합군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매일 수천 명씩 죽어 나가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독일의 암호체계를 푸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연합군 수뇌부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재들을 모아 암호해독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결정하게 돼. 이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은 이가 바로 앨런 튜링이야.


  앨런 튜링은 영국 출신의 천재 수학자로 계산기가 어디까지 논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실험을 시도한 학자야. 즉 전산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는 14살쯤에 미적분을 전혀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보다 더 어려운 난해한 수학 문제를 해결한 일화가 있어. 말 그대로 수학에 있어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26세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 학위취득 후 1939년에 영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 정부의 독일군 암호해독 팀장으로 일하기 시작하지. 


  튜링에게도 약점은 있었어. 천재적인 수학자이기는 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 이 모습을 본 조안(키이라 나이틀리)은 앨런에게 조언을 하지. “앨런,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중요하지가 않아요. 에니그마는 항상 더 똑똑할 테니까요. 만일 당신이 정말로 이 퍼즐을 풀고 싶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동료들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당신 일에 도움을 주지 않을 거예요.”


  개인의 능력은 항상 한계가 있는 법, 아무리 뛰어난 천재 과학자였던 튜링이었지만, 혼자서 일하는 그는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내는 데 계속 실패를 하지. 그 이유는 아마 독일에서 튜링과 비슷한 수재들이 모여 암호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일 거야. 이에 튜링은 조안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기의 팀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서 결국 기계를 이용해서 독일군 암호체계를 풀 수 있게 되지.


  그로 인해 영국군은 독일군의 공격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고, 점차 승리가 이어지면서 세계 2차 대전은 끝나게 돼. 전쟁이 끝났다는 얘기는 더 이상 소중한 젊은이의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끝났다는 것이고, 튜링은 어쨌거나 그 많은 생명을 구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일 거야. 


  튜링은 1945년 전쟁 중에 세운 공로로 영국에서는 가장 명예로운 대영제국훈장을 받게 되지. 전쟁 후에도 그는 연구를 열정적으로 계속했고, 맨체스터 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1951년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돼.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당시 영국 형법에 따라 화학적 거세를 당하게 돼. 그리고 1954년 42세라는 나이에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튜링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천재라는 운명이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홀로 외로이 너무나 어려운 문제에 매달려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고, 커다란 업적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에 많은 연민을 느꼈어.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그렇게 완벽하지도 않으며, 아픔과 고통도 따르는 것 같아. 물론 훌륭한 업적과 성취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즐겁고 기쁜 순간이 많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았던 것 같아. 


  친구야, 

  우리는 그리 많은 욕심을 내며 살아가지는 말자. 아무리 남들이 추앙하는 결과를 만들었어도 불행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은 그러한 삶은 좋은 것 같지는 않아. 좋은 영화를 보긴 했지만, 마음이 아팠던 것은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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