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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9. 2022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친구야,

  이제 봄도 끝나가고 조만간 뜨거운 여름이 오겠지. 모든 것은 그렇게 왔다가 잠시 머무르고 언젠가 떠나가는 것일까? 그 언젠가를 우리가 안다면 오늘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텐데 막상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한창훈의 단편소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을 읽었어. 평범하게 살아가는 어떤 한 직장인 남자가 자기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 이야기야. 


  주인공은 항상 자신의 옆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선영이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어. 평소처럼 일을 하다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이미 그녀는 영안실에 누워 있었어.


 “제발, 한 번만 그녀를 내 앞에다 데려다 줘. 세상에 이런 일이 있어? 단 한 시간만. 남은 내 삶을 모조리 퍼 가도 좋아. 단 한 번만 만나게 해 줘. 이렇게 모든 게 마무리될 수는 없어. 이런 식으로 끝이 날 수는 없는 거야. 말도 안 돼. 이건 누군가 꾸는 꿈이야. 내 이야기가 아니야.”


  오래도록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전혀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간은 충분하니까 잠시 미루었다가 나중에 해주면 될 줄 알았는데, 내일을 위해 오늘 힘든 것을 함께 참고 살았는데, 허무하게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그녀는 그를 남겨두고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


  “뜨거운 쇳물 같은 것이 양미간에서부터 시작해서 동그랗게 퍼지다가 발끝에서 싯, 빠져나갔다. 동시에 세포들이 소스라치게 일어났다. 살갗에는 수없이 많은 무덤들이 생겨났다. 무서워 눈을 질끈 감으면 이번에는 뜨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주변에 모여든 것들의 형체가 뚜렷이 보였고 눈을 뜨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어둠이 가로막았다. 그는 급기야 부르르 떨면서 불에 댄 벌레처럼 몸을 뒤틀었다. 세상이란 사람 혼자서 견디기에는 너무 넓고 크고 무서운 거였다.”


  허무함과 허탈함을 넘어 주인공은 삶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 없이는 살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어. 그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그녀에게 있었는데, 이제는 무슨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그는 알 수가 없었어. 사랑하는 사람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기에 그는 이 세상의 끝으로 자신도 모르게 가게 돼.


  “가느다란 선 하나로 이 세상을 양분시켜 놓고 수평선과 오랜 시간 닳아져서 구멍이 층계처럼 만들어진 바위들. 잡목 숲을 떠받치고 있는 깎아지른 절벽.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고 멀리 산을 따라 전봇대가 줄지어 가고 있는 곳에서 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을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바다는 넓었고 넓고 큰 것은 별 움직임 없이 그냥 그대로 있었다. 일을 마친 기분이었으나 도무지 하루 일과를 마쳤을 때 찾아오는 뿌듯한 피곤함은 생기지 않았다. 오후 내내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고 그러다가 노을이 졌다. 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후두두둑 떨어져 내렸다. 함박눈 같았다.”


  하지만 세상의 끝으로 간다고 해도 사랑했던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지나간 일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무슨 의미로 그는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그리움이라면 가능할까? 남은 시간을 사랑했던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언젠가는 모든 존재가 나에게서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떠나버리기 전에 후회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늘을 살아갔을 텐데. 


  그는 세상의 끝에 가서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세상의 끝에 가보니 자신의 마음이 위로는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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