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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14. 2022

삶의 가벼움 (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제5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다나베 세이코의 <감상 여행>은 내세울 것도 없는 삼류 방송 대본 작가인 ‘나’와 서른일곱 살인 ‘유이코’를 중심으로 방송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하루는 어떠한 커다란 삶의 의미나 목적보다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인 양 경박하게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것도 대도시에서 매일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삶에 대해 어느 정도의 깊이와 무거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하는 매일 반복되는 일들은 정녕 무엇을 위한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쩔 수 없이 참으며 해야 하는, 자신의 꿈을 저버린 채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잊은 채,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맛도 모르고 먹는 식사처럼, 그렇게 하루를 때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기, 히로시, 사랑이 뭐야? 사랑이란 거, 정말 있다고 생각해? 우리,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 섹슈얼한 욕망과 미모 추구, 공통의 관심, 계급상의 이해 및 동류의식을 갖는 것, 노후의 타산 따위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앗, 아니면,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게 아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것들이 사랑의 왕좌를 빼앗아 대신하는 걸까? 하지만 히로시, 화내지 말아 줘. 나 너랑 잤을 때, 케이 때처럼 기쁘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결국, 그 케이와의 일은 역시 나의 사랑이었을까? 그거야말로 진짜 사랑이었던 걸까? 그것을 케이는 왜 몰라줬을까? 게다가, 이런 것과 케이가 늘 말하던 민중에 대한 사랑은 별개인 걸까? 한 인간의 사랑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그들의 삶의 가벼움은 생활에 관습처럼 박혀 사랑에 대해서도 그리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다지 생각지도 않고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볍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오랫동안 현대화된 대도시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삶의 무거움을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게 될까? 그저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나가 출근하고 살만큼의 돈을 벌고 관심 있는 사람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걸까?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그들은 가벼웠던 그 시간들에 대해 어떤 회상을 하게 될까?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을 그저 감상 여행으로만 끝내도 충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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