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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9. 2022

바보들의 배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가 그린 <바보들의 배>를 자세히 보면 배 밑에 물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표정부터가 심상치 않다. 배를 타다 물에 빠졌다면 당황하고 두려워 겁이 잔뜩 들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벌거벗은 몸으로 자신이 배를 밀어서 움직이려고 한다. 배의 탁자에는 분명 비싸 보이는 과일인듯한 것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식탁을 주위로 신부님과 수녀는 악기를 연주하며 뭐가 그리 신났는지 가운데 매달려 있는 둥그런 것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목놓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중의 한 명은 머리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손을 높이 쳐들어가며 신나게 놀고 있다. 그 옆에는 술병을 높이 쳐들고 있는 수녀가 있고, 배의 바닥에는 한 남자가 누워서 그 수녀를 쳐다보고 있다. 신부의 오른편에는 혼자서 덩그러니 배 밖의 물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고, 그 위에는 배 위에 실려 있는 나무 위에 앉아 한 남성이 혼자 즐겁게 무언가를 마시고 있다. 배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나무까지 싣고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놀라운 것은 이 배에는 바람을 이용할 돛대도 없고, 배를 저을 노도 전혀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하는 일에만 빠져 있을 뿐이다. 흔히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배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술만 마시고 자신들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하여 <광인들의 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이 그림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만큼 이 그림은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한 것은 이 배에는 왜 바보들만 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이 원해서 이 배를 탔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바보들만 모아 이 배에 태워서 어디론가 보내려고 했던 것일까? 배를 타는 목적은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함인데 왜 배에는 돛이나 노가 전혀 없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가정을 해보자. 이 그림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원해서 이 배를 탔다면 그들은 단순히 바보들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만의 목표와 이상이 있기에 그들이 모여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만이 모여서 자기들이 닿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이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향해 스스로 그 길을 나서는 바보가 아닌 선구자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억지로 모아서 이 배에 태웠다면 이들을 태운 사람들이 바보들이 싫어서 또는 미치광이들을 대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이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왜 바보들을 자기 세계에서 떠나보내고 싶어 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바보들이 정상적이 아니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정상이고 어떤 것이 비정상일까? 그런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할 수 있는 확실한 판단기준이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정상과 비정상, 즉 바보가 아닌 사람과 바보인 사람을 어떻게 확실히 구분할 수가 있을까? 어떤 무리의 사람들이 이들을 바보라 생각해서 이 배에 모두 태워 그들을 멀리 떠나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바보라고 판단한 그 사람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절대적으로 바보가 아니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바보라 쉽게 판단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와는 잘 맞지 않으니 그냥 그들을 배에 태워 멀리 떠나보내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형편과 상황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냥 바보나 미치광이로 쉽게 판단하고, 그들을 배척하여 배에 태워 멀리 떠나보내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두 가지 가정 중에 어떤 것이 맞을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이 이들이 스스로 이 배를 탔다고 한다면 이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며, 억지로 이 배를 탈 수밖에 없었다면 이들을 이 배에 태운 사람도 언젠가는 바보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바보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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