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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9. 2022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친구야,

  우리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 하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극히 약하고 힘에 부치는 존재인지도 몰라. 어떤 단체에서 하나의 부속품인 것처럼 그저 적응하고 변화되고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 또한 사실이야. 


  오늘은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라는 소설을 읽었어. 인간이라는 소중한 존재에 비해, 한 명의 개인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었어.


  “그는 회사에 뼈를 묻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이 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둔 이듬해, 그가 경주 언니보다 먼저 이직을 했다. 경력직 공채에 들어간 시사잡지 편집부에서 오 년쯤 일하다가, 한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특집기사가 인쇄 직전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항의를 위한 태업과 파업, 주동자 해고의 수순을 밟은 뒤 기자들은 끝까지 싸우자는 이들과 업무 복귀하자는 이들로 분열되었다. 그는 돌아가지 않는 편을 택했다.”


  생존을 위해 어느 한 단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생각과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 같아. 커다란 세력에 저항하고 싶지만, 그 한계는 너무나 분명히 존재하기에 어느 정도까지 하다가 지쳐 스스로 그만 포기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


 “서울내기들보다 더 서울내기같이 좀처럼 흥분하지 않던 사람. 새벽까지 다들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하는데 술집 화분에서 풀잎을 꺾어 피리를 불어보다 얼른 내려놓던, 사실은 촌놈. 암 진단을 받은 즈음이었을 여름에 그가 지나가듯 말했다. ‘이제 너무 착하게 살지 말아야겠어. 착한 사람은 일찍 죽는 것 같아.’ 왜 그때 나는 그토록 야무지게 되받아쳤던가? 당신, 별로 안 착하거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테니 걱정 마.”


  울분을 토해내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부당한 것을 지적하고 싶어도 침묵해야 하고, 억울한 것이 있어도 감추어야만 하는 한 개인의 삶은 소중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그저 한 송이 눈처럼 약한 존재인지도 몰라. 


  “함께 있어 주세요, 소녀가 말한다. 젊은 승려가 멀찍이 떨어져 서서 대답한다. 그건 안 된단다. 제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만. 소녀는 나무 욕조의 물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리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 그 눈송이들을 커다랗게 확대한, 눈의 결정 모양을 한 빛 무늬가 무대 뒤편 검은 벽에 하얗게 비쳐 있다. 그 결정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승려가 묻는다. 왜 머리 위 눈이 녹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가 시간밖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한 송이 눈처럼 언제 녹을지 모르는 그런 존재라는 생각에 공감하고 있어. 그 미약한 눈 한 송이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시공간에 살아가고 있으니 그 누가 함께라도 있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간이 비록 짧을지라도 누군가가 옆에 같이 있어 준다면 정말 힘이 될 텐데 현실을 그리 쉽지 않을 거야. 다른 시공간에서 존재한다면, 지금의 여기를 떠나 다른 그곳으로 간다면 가능한 걸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나의 눈 한 송이가 녹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인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 한 송이는 자세히 보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니 그 현실을 알고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는 어쩌면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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