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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9. 2022

죽어있는 것에 대한 사랑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란 시체에 대해 성욕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말한다. 이는 시체같이 죽어 썩어가고 있어서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개념은 시대가 흐르면서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있는 정밀하고 깔끔한 인위적인 것들을 선호하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또한 산뜻하고 화려하며 에로틱하고 아름다운 인위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이 개념이 말하는 것과 같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보다는 자신이 마음대로 처리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의 고유한 생명을 무시하고 그것들을 기술적으로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의 많은 사람은 죽어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계산적인 성격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주위에 있는 많은 것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이익을 가져다주는지가 그 기준이 되어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은 겉으로는 친절하고 무난하게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냉철하게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 철저하게 계산하곤 한다. 주위의 모든 것을 화폐의 가치에 따라 계산하며, 아름다운 꽃이나 자연이라도 화폐적 가치가 없으면 관심조차도 없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비합리적인 종교에 빠져 살던 중세 시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합리적이라고 할지는 모르나, 그 합리성이라는 것이 단지 자기 이익의 부합 여부와 관계된 계산적인 합리성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는 예전의 사람들보다 지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으나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는 따뜻한 애정이 부족한 채 죽어있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오직 자신의 가질 수 있는 물질적 부에 관심이 있고, 그러한 부의 증가나 감소에만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재산의 유지를 위해서는 법적인 이혼도 서슴지 않으며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가족끼리 떨어져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헤어져 살면서 가족 일원의 외로움과 허전함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보다 죽어있는 것의 자기 소유 정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부동산이나 재산상의 손실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도,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의 고통에는 그다지 마음 쓰지도 않는다. 늙고 병들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부모를 자기 일과 성취를 위해 찾아가지도 않는다. 전화 한 통이나 은행 계좌에 소액을 입금하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은 다 한 것으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자신의 배우자가 직장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보다 생활비로 얼마가 주어지는 데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가족 일원에 대한 이해보다 자신의 추구하는 목표가 우선이고, 사회적 성공을 가정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생각건대 우리는 물질적인 부를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기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고 외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만 생각하고, 그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어 낸 후에는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과 노력을 모두 잊어버리고 미련 없이 그들을 내버리기도 한다. 살아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자체의 고유함이나 개성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지만, 많은 경우 죽어있는 것의 획득을 행복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것도 죽어있는 것을 많이 얻을수록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돌아갈 집이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수십 채, 아니 수백 채, 심지어는 수천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기 행복의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할 뿐이며, 그 욕심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갈증만 일으킬 뿐이다. 그 많은 재산과 부동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죽어있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 우리는 내적으로 병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동이나 공감도 없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어있는 것에 대한 집착은 내적인 자아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살아있고 감동을 주는 따뜻한 것에 대해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 하루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있는 것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어있는 것을 사랑하는 우리는 어쩌면 죽어있는 것을 추구하는 종교의 광신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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