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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08. 2022

나무 불꽃

  친구야,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흐리네. 며칠 전에 온 비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 오늘은 평일이지만 시간이 있어서 한강의 <나무 불꽃>을 읽었어.

  소설에서 정신 병원에 있는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어 해.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그녀는 왜 나무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일까? 그녀 안에 있는 그 무엇이 그녀를 나무가 되기를 원하게 했던 것일까? 영혜는 나무가 되기 위해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아. 나무처럼 물과 햇빛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영혜의 음성은 느리고 낮았지만 단호했다. 더 이상 냉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어조였다. 마침내 그녀는 참았던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네가! 죽을까 봐 그러잖아!

  영혜는 고개를 돌려, 낯선 여자를 바라보듯 그녀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이윽고 흘러나온 질문을 마지막으로 영혜는 입을 다물었다.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


  영혜는 왜 죽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삶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이 하나도 없었어. 죽음이나 삶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죽는다고 아쉬울 것도 없는 듯 그녀는 죽음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원하고 있었어. 그녀의 삶의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맞은편에는 후락한 가건물들이 서 있었고, 차량이 다니지 않는 가장자리의 침목들 사이로 손질 안 된 풀들이 웃자라 있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본 적 없이 그렇게 세월을 보냈던 영혜와 언니, 돌이켜보면 그들의 삶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었던 거야. 나무가 평생을 그 자리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의 삶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아니면 사회에 의해 그저 주어진 것들을 해내는 것에 불과했던 거야.


  “봄날 오후의 국철 승강장에 서서 죽음이 몇 달 뒤로 다가와 있다고 느꼈을 때, 몸에서 끝없이 새어 나오는 선혈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믿었을 때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영혜가 나무가 되려고 하는 것에서 언니 또한 자신의 삶도 죽어 있었음을 깨닫게 돼.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자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돼. 영혜는 자신의 삶이 나무 같았던 삶이었기에,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아예 나무가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아직 어두운 새벽, 지우가 깨어나기 전까지의 서너 시간. 어떤 살아 있는 것의 기척도 들리지 않는 시간. 영원처럼 길고, 늪처럼 바닥이 없는 시간. 빈 욕조에 웅크려 누워 눈을 감으면 캄캄한 숲이 덮쳐온다. 검은 빗발이 영혜의 몸에 창처럼 꽂히고, 깡마른 맨발이 진흙에 덮인다. 그 모습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면, 어째서인지 한낮의 여름 나무들이 마치 초록빛의 커다란 불꽃들처럼 그녀의 눈앞에 어른거린다. 영혜가 들려준 환상 때문일까. 살아오는 동안 보았던 수많은 나무들, 무정한 바다처럼 세상을 뒤덮은 숲들의 물결이 그녀의 지친 몸을 휩싸며 타오른다. 도시들과 소읍들과 도로는 크고작은 섬과 다리들처럼 그 위로 떠올라 있을 뿐, 그 뜨거운 물결에 밀려 어디론가 서서히 떠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영혜와 언니는 나무 같은 삶을 끝내고 싶었어. 나무에 불이 붙어 찬란하게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이 모두 타 사라지기를 희망했는지 몰라. 자신의 삶이 아닌 그저 주어진 위치에서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 자체에 무의미함을 느낄 뿐이었어.


  우리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얼마나 나의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냥 나무처럼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주어진 대로만 지내고,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다른 것들을 위한 나의 삶으로만 나의 인생은 채워져 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삶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일까? 내가 주인이 아닌 삶이라면 나는 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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