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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12. 2022

그는 언제 오는가


  소중했던 사람이, 오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신경숙의 <그는 언제 오는가>는 평생을 같이했던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생긴 살아남은 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생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생이 내 앞에서만은 더 이상 곡예를 부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조용한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내 생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아무런 일이 없어도 나는 가위를 들고서 미용실 의자에 편안히 앉아있는 여자들의 머리를 손질하며 평생을 보낼 수 있다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 오만이었을까. 인생은 또 한 번 나에게서 내 동생을 빼앗아 갔다.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는 또 언제 올 것인가.”


  삶에서 드라마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드라마일 수밖에 없으니 꿈꿀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있었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살아가려는 것도 욕심인 것일까? 삶은 그런 꿈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그러나 분명 내 안에서 솟구치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말을 멈춘 건 내가 그의 얼굴을 만지게 되었을 때 내 손바닥에 가득 그의 눈물이 묻어서이다. 깨어 있었던가. 그냥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그는 주룩주룩 울고 있다. 소리 없이. 나는 그의 머리를 내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울어요. 실컷. 그리고 돌아가서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요. 안 하기 시작하면 나처럼 돼요.”


  떠나간 사람을 대신해서 또 다른 누군가가 오는 것일까? 그가 올 수가 없으니 결국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삶의 본능은 아픔을 능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을 잊히게 만드는 것이 본능인지 모른다. 


 “지금은 이렇게 캄캄한 마음이지만 어디선가 다시 냄새가 나고 우리는 더듬더듬 다시 그 냄새를 찾아갈 거야. 지금은 이렇게 가슴 아프고 아쉽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지 않겠어요. 다시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공유했던 그리움으로 서로의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지붕을 올려다보겠지. 불시에 그가 다시 찾아올까 봐 불안해하며 우린 밤이 깊도록 수화기를 붙들고 대화를 나누게 될지도 모르죠. 어쩌면 언젠가 다시 이 장소로 돌아와 있을지도. 그러나 제부, 우린 살아갈 거예요. 그게 우리의 본능일 테니.”


  살아남은 자의 몫은 어차피 이미 주어져 있고, 지나간 시간은 이제 추억으로 남겨져 또 다른 시간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 예전처럼 익숙한 삶을 회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의 크기도 그렇게 줄어드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삶의 본능마저 없다면 우리는 그 아픔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대천이 어디냐고. 가본 적이 있느냐고. 강원도 양양에 있는 천이고 몇 번 가보았다고 했죠. 그건 갑자기 왜 묻느냐니까 그러데요. 남대천 물속 가득 연어가 돌아오고 있대요. 얼마나 장관일까?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그때서야 신문을 보니까 삼사 년 전에 치어로 방류되었던 연어들이 북태평양까지 갔다가 산란하러 회귀하는 사진이 실려 있더군요. 그 사람이 그러데요. 연어들은 뭐 하러 그렇게 기를 쓰고 떠난 곳으로 돌아오는 거냐구. 알을 낳고 나면 까맣게 타서 죽는다면서. 죽으려고 오는 거냐구. 갑자기 그 사람의 목소리가 격해지더군요. 죽으려고 돌아온단 말이에요? 하면서”


   연어가 그 먼 길을 거쳐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정말 죽기 위해 오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되어 남대천에 뿌려지기를 원했다. 아마 그녀가 그런 유언을 남긴 것은 자신이 죽고 나면 살아남은 자들이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본능처럼 자신을 잊고 살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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