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by 지나온 시간들


판단은 천천히 하는 것이 낫다. 아직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판단해 버리고 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시간이 촉박할 때는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결정을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많은 시간을 두고 계속 그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in Zurich, ETH) 학부 과정을 졸업한 후, 다시 이 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지원을 했었다. 하지만 물리학과의 어떤 교수도 아인슈타인을 받아 주려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과 학부생이었을 때 물리 실험을 하던 중 실수를 해서 물리학과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큰 소란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수업에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교수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모교의 대학원 입학을 거부당한다. 나중에 아인슈타인과 그의 아버지가 물리학과에 사정을 해서 어떤 실험도 하지 않고 이론물리학만 공부를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학원 과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입학을 허락받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 당시 대학원 공부를 했다면 상당한 고학력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불러주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절친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스위스 베른에 있는 특허청에 아는 사람이 있어 소개를 해주는 바람에 간신히 합격을 했다. 소위 요즘 하는 말로 “낙하산”이었다. 취업을 하고서도 자신의 전공하고는 상관없는 특허 사무 일을 오랫동안 해야 했다. 왜냐하면 박사학위를 마치고도 그를 불러주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1905년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해에 쓴 또 다른 논문인 광전효과에 대한 논문으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아인슈타인의 가치를 왜 사람들은 일찍 알지 못했던 것일까?


취리히 연방 공대는 당시에는 사실 평범한 학교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 대륙 전체에서 가장 합격하기 힘든 학교가 되어버렸다. QS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ETH Zurich는 전 세계 6위, 유럽 2위이다. 왜 그럴까? 아인슈타인이 다녔던 학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양자 중력이론(Quantum gravity) 과목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 과목은 물리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 중의 하나였는데, 담당 교수님이 Steven Carlip 교수님이셨다. 이분은 2+1 Dimensional quantum gravity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one top이라 할 만큼 뛰어난 석학이셨다. 학부, 박사를 모두 Harvard에서 하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분의 강의는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수업 중에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분이셨다. 쉽게 말해 그분은 그냥 천재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분의 수업을 듣고 나서 나는 천재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학교 근처에 있는 햄버거집으로 가는 길에 그분을 만났다. 당연히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리고 헤어져서 길을 가다 문득 뒤를 돌아 그분을 보니 정말 평범해 보였다. 옷도 낡은 청바지에, 낡은 운동화, 면도도 안 해서 수염은 덥수룩하고, 윗옷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것만 입고 다니셨는지 펑퍼짐한 낡은 카디건이었다.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 노숙자 정도는 아니었어도 거기에 가까워 보일 정도였다. 그분은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한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이런 차이가 있다.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알지 못하고 판단한다면 정말 커다란 실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둔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떤 사물이건 그것의 가치는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알 수 있는 기회도 없었는데 어떻게 판단을 한단 말인가? 그것이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인지는 천천히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현재 접하고 있는 어떤 사물이건 사람이건 정말 그것에 대해 잘 알고는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 판단을 내려도 충분한 것일까? 어느 정도까지 알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걸까?


평범한 풀꽃이라 몰랐다. 정말 몰랐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너무나 예뻤다. 오래도록 보다 보니 더욱 예쁘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판단을 하지 않아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만약 했더라면 어떻게 될까?


<꽃그늘>

나태주


아이한테 물었다


이담에 나 죽으면

찾아와 울어줄 거지?

대답 대신 아이는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평범했지만 정말 소중했고 지나고 나니 너무나 그리워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풀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어 죽고 만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리 많은 시간들이 아니다. 미워하기보다는 예뻐할 시간도 부족하다. 눈물은 아무 소용없다. 판단만 빨리하지 않더라도 눈물을 덜 흘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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