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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19. 2022

밝아지기 전에

우리의 삶은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영원히 나의 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한강의 <밝아지기 전에>는 우리에게 있어 존재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 생각하지도 않은 일로 갑자기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소설이다. 


  “부질없는 심문과 대답 사이, 체념과 환멸과 적의를 담아, 서늘하게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

  눈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시간.

  내 죽음 속으로 그가 결코 들어올 수 없고, 내가 그의 생명 속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시간.

  오직 삶을, 삶만을 달라고,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기어가 구걸하고 싶었던 시간.

  그 시간들이 충분히 멀어지지 않았다. 모래톱 저쪽의 바다처럼, 아직 지척에서 일렁이며 소리를 낸다. 짠물이 덜 마른 흙 같은 몸이 아직 모든 걸 똑똑히 기억한다.”


  모든 시간들이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내 곁에 계속해서 머무를 것 같았던 시간들이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지만, 나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왜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에게 말해보고 싶었다. 

  새벽까지 타는 심장을 그녀가 지켜보았던 그해.

  생각 속의 미로 속에서 더듬더듬 내가 움켜쥐려 한 생각들을.

  시간이 정말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짐승처럼 죽지 않도록,

  다음번엔 두려워하지 않을 준비를 하겠다고.

  내 안에 있는 가장 뜨겁고 진실하고 명징한 것,

  그것만 꺼내놓겠다고.

  무섭도록 무정한 세계,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


  우리에게 시간이 다시 주어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을 너무 쉽게 놓치고 말았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와 시간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놓치기 전에, 소중한 것들이 나에게서 멀어져 버리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기 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들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그 순간들을 소중히 살아가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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