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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20. 2022

엄마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해 주었을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김숨의 <옥천 가는 날>은 죽음을 앞둔 엄마가 평상시에 그렇게 원하던 옥천을 향해 가면서 딸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 속에 우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새끼 금붕어 한두 마리씩 줄어드는 것 같더니만 어느 날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녀로서는 뭔 까닭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수족관 속 물이 흐르기라도 해 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면 모를까. 어미 금붕어가 무심히 주둥이를 벌리고 제 새끼를 삼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서야, 그녀는 그 까닭을 확실히 알았다.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녀는 그 얘기를 어머니에게 해 주었다.”


  우리의 삶은 엄마의 자궁에서 시작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빛을 보게 된 이후 죽을 때까지 엄마의 자궁은 삶의 근원이 아닐 수 없다. 항상 돌아가고 싶고, 그리운 곳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할 때도 그리운 곳이 바로 그곳이다. 엄마는 삶의 시작이자 마지막일 수밖에 없다.


  “먼저 흐느끼기 시작한 쪽은 애숙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출발하기 전 병원에서 이미 한바탕 눈가가 짓무르도록 펑펑 울었던 탓에 눈물이 바닥난 줄 알았는데, 새우젓 국물처럼 짜고 걸쭉한 눈물이 넘치듯 흘렀다. 정숙도 울먹울먹 하더니 명주실 뽑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꼈다. 운전기사는 익히 보아온 장면인 듯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고속버스들 틈에 끼어 1차선을 내달리던 구급차는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구급차가 대전 진입로를 지나칠 때까지 그녀들은 따로, 또 같이 흐느껴 울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소설에서 엄마의 고향은 옥천이었다. 고향을 떠나 자식을 키우느라 그 오랜 세월 동안 엄마는 그리운 당신의 고향을 한 번도 방문할 기회조차 없었다. 가족을 위해 당신의 그리움마저 잊고 살았다. 엄마의 평상시 소원이 고향을 한번 가보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들은 엄마와 함께 옥천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7명의 자식이 있었건만, 그 누구도 엄마와 동행하여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를 구급차에 태워 그토록 원하던 고향인 옥천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그립던 고향을 보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바쁘게 만들기에, 엄마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루면 충분한 일이었다. 그 수많은 날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단 하루를 내지 못해 엄마가 가장 바랐던 것 하나 들어주지 못했던 것일까? 아무리 운다고 해도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은 채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 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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