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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06. 2022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는 살아가면서 얻은 가장 큰 상처로 인한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형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다 상처는 있기 마련이며, 그곳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소위 ‘병신과 머저리’라고 표현한다. 삶은 그 아픔보다 훨씬 위대한데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니 바보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다시 관모 쪽을 살폈다. 가슴께서부터 눈 위로 검은 반점이 스멀스멀 번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상체부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총을 비껴 쥐고 조심조심 관모 쪽으로 다가갔다. 가슴께에서 쏟아진 피가 빠른 속도로 눈을 물들이고 있었다. 금세 나의 발을 핥고 들 기세였다. 나무들은 높고 산골엔 소름 끼치는 고요가 짓누르고 있었다. 이상스런 외로움이 뼛속으로 배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관모가 몸을 꿈틀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것은 모래성에서 모래가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처럼 작고 신경에 닿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핏자국이 눈을 타고 나의 발들을 덮었다. 나는 한참 동안 두려운 눈으로 관모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입으로 짠 것이 흘러들었다.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채기에서 볼로 미끈한 것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강계까지 진격한 형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전투에서 패한 후 패잔병으로 낙오하게 된다.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자신을 성폭행하고 동료 전우들을 괴롭힌 상관을 총으로 살해한다. 이것은 전쟁이 끝난 후 외과 의사가 된 그에게 있어 커다란 상처로 남았고, 수술 중 자신의 실수로 인한 어린 소녀의 죽음 앞에서 결국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의사라는 직업을 수행하지 못한다. 


  “비로소 몸 전체가 까지는 듯한 아픔이 전해왔다. 그것은 아마 형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형은 그 아픔 속에서 이를 물고 살아왔다. 그는 그 아픔이 오는 곳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견딜 수 있었고, 그것을 견디는 힘은 오히려 형을 살아 있게 했고 자기를 주장할 수 있게 했다. 그러던 형의 내부는 검고 무거운 것에 부딪혀 지금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형은 곧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형은 자기를 솔직하게 시인할 용기를 가지고, 마지막에는 관모의 출현이 착각이든 아니든, 사실로서 오는 것에 보다 순종하여, 관념을 파괴해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형은 그 아픈 곳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형을 지금까지 지켜온 그 아픈 관념의 성은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만한 용기는 계속해서 형에게 메스를 휘두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창조력일 수도 있었다.”


  동생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처로부터 치유받지 못한 채 항상 과거에 매달려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상처는 그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만들고만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처나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상처의 크기와 깊이를 따진다면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삶을 크게 바라보았을 때 누구나 삶의 올가미가 될 아픔은 있기 마련이다. 오직 그 아픔의 크기는 그 사람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누군가는 커다란 아픔이 있었어도 그 상처를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극복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리 큰 상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상처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 족쇄에서 해방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일 뿐이다. 그 누구도 이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에 얽매어 자신의 소중한 삶을 조금씩 잃어가든지, 아니면 이를 스스로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든지 하는 것은 오직 그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상처를 치유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이를 기대하는 것은 겁쟁이일 뿐이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 한, 그 상처는 낫지 않는다. 평생 그 상처만 바라보고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 과감하게 이를 떨치고 스스로 치유하고 과거의 어떠한 상처라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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