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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28. 2022

공존의 그늘

이 세상에 완전히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 함께 공존해가야 하는 것이 운명일 수밖에 없다. 내 주위에도 누군가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무인도에 가서 살지라도 다른 동물이나 식물 하물며 내가 살아가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없으면 존재는 결국 끝을 보게 된다. 이러한 공존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직장에도 나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있기 마련이며, 그들과 함께 일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족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위해 여러모로 애쓰고 사랑하지만, 아픔과 힘든 것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며 살아가게 된다.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는 공존에 의해 생길 수밖에 없는 그 이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쯤 되면 20세기 초에 이곳을 찾아와 악마의 땅이라며 저주를 퍼붓고 간 폴 클로델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누구라도 유적들을 휘감고 탐욕스럽게 커버린 10층 건물 높이의 판야나무를 본다면 이곳을 떠도는 마성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작디작은 씨앗의 위력. 그것에 떨게 되고 자연스레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 역시 당신의 삶에 날아 들어온 작은 씨앗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 머리 어딘가에 떨어졌을, 그리하여 거대한 나무가 되어 당신의 뇌를 바수어버리며 자라난, 이제는 제거 불능인 존재에 대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에는 다른 무엇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존재가 오래도록 나와 함께 하며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심지어는 나를 파괴하려고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은 이미 나의 삶 속에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제거하고 싶어도 잘 제거되지도 않고, 도망치고 싶어도 그리 쉽게 도망갈 수도 없다. 


  “나무가 무섭습니다. 당신의 말에 승려는 웃는다. 거대한 석조 불상의 틈새에 자신의 뿌리를 밀어 넣어 수백 년간 서서히 바수어온 나무를 보며 승려는 반문한다. 나무가 왜 무서운가? 이곳의 나무들이 불상과 사원을 짓누르며 부수어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승려는 보시 음식을 싼 기름종이를 다시 바랑에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아니면 돌이 나무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승려는 나무뿌리에 휘감긴 불사를 향해 합장을 하며 말을 이어간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힘든 일이 많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직장이 있으므로 해서 살아갈 수 있기도 하다.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그들로 인해 좋았던 순간도 있었다. 온전히 나를 어렵게만 하는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잘 모르는 그 존재의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이곳 타프롬 사원에만 남아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 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바람이 휭 하니 불어와 승려의 장삼을 펄럭였고 당신의 땀을 증발시켰다. 승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존재는 다른 것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공존에는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그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늘도 때로는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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