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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01. 2022

그동안 걸어온 길의 기억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모든 과정을 갈 때 언젠가는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볼 때도 있고,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걱정을 하며 갈 때도 있다. 이혜경의 <고갯마루>는 삶의 과정에서 절반을 넘어 이제는 내리막길에 들어선 어느 한 평범한 중년 여성이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이다. 


  “출발을 알리는 높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리고 열차가 덜컹,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창가 쪽에 앉은 내 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의 기억이 삭은 밥처럼 흐무러져,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아득함.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닫힌 문 앞에 서 있거나, 아파트 단지 앞에 간이 책상을 놓고 전단을 뿌릴 때면 내 속에서 조금씩 괴사가 이는 것 같았다. 한 달 한 달 넘어가는 마감 무렵이면 뭉텅이로 멍이 들었다. 지난달보다는 실적이 나아야 한다는 강박이 허공에서 채찍질했다.”


  오래도록 일해오던 직장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만만치 않음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모든 순간들을 우리는 어쨌든 또 살아내야만 한다. 이제는 좀 여유가 있을 법도 한데, 무엇이 그리도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인지 끊임없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삶의 파도가 다가온다.


  “큰오빠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부대는 바람에, 나머지 식구들은 그 펄럭이는 꿈의 자락에 쏠려 거듭 엎어져야 했다. 결혼해서 분가할 때 할아버지가 떼어준 재산을, 급작스럽게 죽은 남편 대신 불려놓은 엄마의 야무짐도 속수무책이었다. 목돈이 집 안에 들어올 때면 꿈에 돛을 달고 펄럭이던 큰 오빠는 몇 달 안 가 난파된 뱃조각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도박을 했을까, 사기당했을까, 아니면 여자가 있을까. 형제들은 궁금해했지만, 여자치고는 대범한 편이면서도 큰오빠를 아버지 권한대행으로 깍듯이 대접했던 어머니가 단단히 잡도리를 해놓는 바람에, 속이 울근불근해도 말을 못 했다. 큰오빠가 인감을 빼내어 집을 담보 잡힌 걸, 밖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 알게 되지만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고향 마을에서 여생을 마쳤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가족이지만, 그 시간에 비례해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보다는 그 반대의 일들이 쌓여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 것일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여장부 소리를 들을 만큼 꼿꼿하던 어머니가 사는 일에 맥을 놓은 것은 셋째 오빠의 결혼을 앞두고 살림 내줄 방을 구하던 무렵이었다. 방바닥에 엎드린 채 이리저리 돈을 맞춰보던 어머니는 잡기장을 겸한 금전출납부를 탁 덮고 창문 밖에 멍하니 눈을 주었다. 산비탈 맨 꼭대기 집이어서 문밖엔 매연에 찌든 채 가까스로 꽃을 피워내는 아카시아나무 몇 그루가 보이고, 누군가가 일군 손바닥만 한 밭이 있을 뿐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부연 하늘이었다. 한참 뒤에야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며 한숨 쉬듯 혼잣말했다. 내가 그 너른 집 놔두고 떠나와, 자식 결혼시킬래도 이렇게 서울 거지가 다 되어가지고...”


  살아갈수록 무거운 짐도 가벼워지면 좋으련만, 결코 그 짐의 무게는 가벼워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삶의 고개를 넘어 이제 내리막길이라 수월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 내리막길마저도 힘들게 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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