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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06. 2022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

나는 주위에서 환영을 받는 사람일까?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나는 반가운 존재인 것일까? 성석제의 <내 고운 벗님>은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낚시만 그런 줄 알아? 아냐. 골프도 그래. 드라이버, 잔디의 성질, 날씨, 바람의 방향, 골프 치는 사람, 캐디, 골프장 소유자, 게임에 걸린 돈, 이거 전부 조건 아닌가. 골프만 그러냐. 아냐. 전쟁도 마찬가지야. 병력, 장비, 수송, 화력, 작전, 참모, 지휘부 이거 전부 조건이야. 전쟁은 조건이란 말이야. 내 말 듣고 있어? 잘 들어. 인생은 조건이다. 인생은 조건. 인생은 조건이란 말이다. 알아들어? 야, 임마 너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섀키가.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눈깔을 어디로 돌리고, 야 이 씨부랄 놈아. 이 캐애섀키가 뒈질라고 환장을 했구만.”


  어떤 사람이 환영받지 못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쩌면 평생 많은 사람으로부터 따뜻함이나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오면 반기고 기뻐한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인 걸까? 


  누구와 함께 어울린다고 함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더라고 이를 고집하는 한 환영받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낚시는 끝났다. 대위를 택시를 대절해서 가버렸다. 왔을 때처럼 손가방 하나만 들고 가버렸다. 쓰레기며 쓰레기봉투며 낚시대며 텐트며 침낭이며 파라솔이며 릴, 낚시줄, 찌, 캐미라이트, ......, 칼, 랜턴을 남기고 가버렸다. 떡밥이며 새우며 지렁이며 구더기며 글루텐이며 흔전만전 내버려 놓고 가버렸다. 윙윙 금빛 파리떼가 꼬이는 곳마다 변덩이와 휴지를 남겨놓고 가버렸다. 정통낚시에서 화투를 섞던 어영만이 말했다. 

‘가줘서 고맙네요이. 그 새끼, 미쳤어도 가주니 참말로 고맙지라.’

새 화투판을 둘러싸고 둥글게 모여 앉은 모두들 머리를 끄덕댔다. 한둘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려 노력했다. 그에게 많은 배려를 했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려 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를 위해 베풀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이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옳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었다.  결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각자 독립된 존재로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면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다. 나와 다른 면을 조금만이라도 받아들인다면, 그와 함께 하는 데 있어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울림은 나와 독립적인 존재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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