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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19. 2022

사랑하는 까닭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경허 스님이 어느 날 산속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고 전날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눈을 헤치며 길을 가는데 발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파헤쳐 보니 한 여인이 얼어붙은 채 죽은 것처럼 아무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가슴에 귀를 대보니 아직 숨은 붙어 있었습니다. 급하게 그 여인을 업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사찰로 뛰어갔습니다. 방에 눕히고 문을 닫았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이라 사찰에 여인을 업고 들어오는 것을 누가 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허 스님은 그 사찰의 주지였고 조선에 너무나 잘 알려진 고승이었습니다. 방에 불을 지피고 자신의 체온으로 여인의 몸을 녹였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자신의 방에서 나가지 않고 여인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경허 스님이 일주일이 넘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자 사찰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제자였던 만공 스님이 주위 사람들의 성화에 경허 스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경허 스님은 그 여인에게 팔베개를 해준 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도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평소 스승의 고결한 모습만 보던 제자 만공 스님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방 안에서 나는 엄청난 악취였습니다. 만공 스님은 두 남녀가 일주일 동안 나눈 정사로 인한 것인가 싶었는데 그런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여인은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방안에 나는 악취의 원인은 그 여인의 섞어가는 살과 고름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여인은 미친 여자였습니다. 그 여인은 어떻게 해서 미치게 된 것일까요? 문둥병에 걸린 그 여인을 그 누구도 돌보아 주지 않았고,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그 오랜 세월 그 여인은 어떠한 사랑도 받지 못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경허 스님은 미친 문둥병 여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옷을 벗고, 그 여인의 옷도 벗긴 후 자신의 체온으로 그 여인을 안아주었습니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문둥병에 걸린 그 여인의 맨살에 자신의 맨살을 맞대서 얼어붙어 생명의 끝자락에 서 있던 여인을 구해주었습니다. 갈 곳이 없는 그 여인을 위해 일주일 동안 자신의 방에서 먹이고 재우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어떠한 후폭풍을 몰고 올지 경허 스님이 몰랐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경허 스님의 명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다가 경허 스님에게 고칠 수 없는 피부병마저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지 자리를 내놓고 오래도록 머물던 그 사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인의 목숨을 살렸으나, 그 여인을 다른 스님들이 내쫓는 바람에 그 여인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경허 스님은 스스로 파계하고 환속합니다. 경허 스님이 조선 후기의 원효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 사건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문인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아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허 스님이 눈 속에 묻혀 있던 다 죽어가는 미친 문둥병 여인을 업고 와서 일주일이 넘도록 자신의 방에서 거주하게 하며 돌보아 준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 이후 경허 스님은 정해진 곳 없이 전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1912년 4월 25일 북한의 갑산 근처 마을에서 열반에 들게 됩니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 선종을 중흥시킨 대선사로서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스님의 말년을 함께 한 일반인 몇 명이었습니다.


  경허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알고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겼습니다.

  “마음달이 외로워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저의 사랑의 깊이와 폭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요?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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