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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22. 2022

아무도 믿지 못했지만

페르시아의 왕, 샤흐리야르는 왕비가 노예들과 불륜을 벌인다는 것을 알고 왕비와 노예를 죽여버린다. 이웃 나라의 왕인 동생도 같은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심지어 마왕이 외부와 접촉할 수 없도록 숨겨두고 있는 여인마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샤흐리야르는 자기 나라의 모든 처녀를 다 불러들이기 시작한다. 하룻밤 처녀와 자고 나서는 다음 날 아침 그녀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 일이 1,000일 동안 반복되자 그 나라에는 처녀의 씨가 마르기 시작했고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왕의 권력이란 절대적이었다. 감히 그에 대해 나서서 대항할 이가 없었다. 


  이에 셰에라자드라는 한 처녀가 스스로 왕에게 가겠다고 자청한다. 그녀는 왕과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아주 흥미 있는 부분에서 멈추고 만다. 이에 왕이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하라고 하자, 셰에라자드는 후속 이야기가 너무 길어 다음 날 해주겠다고 왕을 설득시킨다. 그렇게 셰에라자드는 왕과 1,000일 동안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인 <셰에라자드> 또한 이와 비슷한 내용의 소설이다. 주인공인 하바라는 혼자 살고 있는 남자였고 그의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는 여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매일 해주었다.


  “하바라는 그 여자에게 셰에라자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녀 앞에서는 그 이름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녀가 찾아온 날이면 매일 쓰는 작은 일지에 ‘셰에라자드’라고 볼펜으로 메모해두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가 해준 이야기 내용도 간단히-나중에 누가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기록해 두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완전한 창작인지, 아니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고 부분적으로는 지어낸 이야기인지 하바라는 알지 못한다. 그 차이를 분간하기는 불가능했다. 거기에는 현실과 추측, 관찰과 몽상이 구분하기 어렵게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바라는 그 진위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무심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사실이든 허구든, 혹은 그것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얼룩 같은 것이든 그 차이가 지금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셰에라자드는 하바라에게 자신이 과거에 벌인 잘못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채,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까지,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것도, 하바라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해 준다. 


  세상을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우리는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경향이 생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셰에라자드는 어떻게 해서 하바라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바라는 그날 밤, 아직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셰에라자드를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이대로 모습을 감출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염려했다.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아니다. 셰에라자드와 그 사이에는 어떤 개인적인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히 누군가에게서 주어진 관계이고, 그 누군가의 기분 하나로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관계였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가느다란 실 한 올로 가까스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아마도 언젠가, 아니, 틀림없이 언젠가 그것은 끝을 고할 것이다. 실은 끊기리라. 늦냐 빠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셰에라자드가 떠나 버리면 하바라는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야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끊기고, 이야기되었어야 할 미지의 신기한 이야기들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다.”


  하바라는 비록 가족도 아니고 아무런 관계도 아닌 그녀가 자신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그녀가 자신에게 오래도록 계속해서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셰에라자드가 자신을 떠날 것을 알고 있다. 


  페르시아의 왕 샤흐리야르는 언제까지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을 텐데, 1,000일이 지나고 나서도 셰에라자드는 샤흐리야르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이 남아있었을까? 시간이 더 지나 10,000일이 넘어서도 셰에라자드는 샤흐리야르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셰에라자드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지자 샤흐리야르왕은 그녀를 어떻게 했을까? 물론 천일야화의 결말은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우리 주위에 끊임없이 서로 대화를 하며 오래도록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그마한 일로 서로 틀어져서 더 이상 얼굴을 안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생각과 이익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스스럼없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기도 한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옳다 옳지 않다를 가리는 이상, 그와 함께 오래도록 믿음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그 모습이 어떠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오래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상 상대에 대한 믿음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오래도록 변함없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세월이 지날수록 그러한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상대에게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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